고교 평준화를 폐지해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을 잡자는 주장을 교육부가 거부하고 나섰다. 교육제도에 대한 평가는 그 제도가 지닌 목적이 잘 달성되는지의 여부에 따라 이루어질 일이다. 부동산 값의 안정을 교육정책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고교 평준화의 폐지를 거부하는 교육당국이 이 제도가 본래의 목적을 잘 이루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꼭 30년전 고교평준화 정책은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며,'망국적 과외병'을 치유하고,학벌주의를 타파해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오늘날 입시경쟁은 더욱 격화됐다. 평준화 이전엔 학교수업을 충실히 함으로써 대학에 갈수 있었는데 이제는 정상적 학교 수업만으론 대학에 진학할수 없게 됐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학교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수적 수단이었던 과외는 이제 실력을 쌓기 위한 주된 수단이 됐으며 학교수업은 졸업장을 받기 위한 형식적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시장을 통제하면 암시장이 성행하듯,공교육이 통제되자 사교육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없애려던 과외는 오히려 더 확대되고 이를 위해 지불되는 사교육비는 이제 대부분 가정의 경제적 짐이 되고 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평준화 이전에는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도 학교 수업만 잘하면 목적하는 대학에 입학해 사회에 진출함으로써 계층간의 이동이 가능했으나 이제 빈곤층은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게 됐으며,따라서 교육을 통한 평등의 진작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세칭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지방출신 학생수가 점차 적어지고 있는 반면,서울의 일부 지역출신 학생수가 높아지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교육은 학생들이 지닌 다양한 잠재력을 계발해 자기 발전은 물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분야의 인재를 길러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평준화 정책은 특성화된 학교의 설립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계발하는데 오히려 장애를 주고 있다. 이렇듯 고교 평준화정책은 교육의 기본 목적 중 어느 하나도 개선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평준화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목고를 만들었고,또 최근에는 자립형 사립학교의 설립을 표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평준화 지역을 유지해 오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부의 입장은 자가당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평준화가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면 비평준화 지역이나,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은 잘못된 것이다. 이제 교육당국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평준화에 매달려 있으면서,미봉책으로 비평준화 지역의 유지나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회복하고,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고,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평준화가 우리 사회에 평등을 진작시키리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평준화의 유지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을 위해서 비록 차선책이지만 공립학교는 평준화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만은 속히 평준화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 고교평준화 폐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합의가 돼가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정당한 이유나 적절한 대안 제시 없이 이를 거부하기만 한다. 이는 개혁을 내세우는 현정부의 노선과 배치되는 일이 아닌가? 교육당국이 더 이상 개혁을 미룬다면 이는 '교육이해집단'의 자기이득 추구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받게 될것이다.30년간의 실험은 끝났다.이미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교육의 모순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았다.이제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정상적인 교육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 과감히 고교평준화 정책을 버려야 할 때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