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백화점의 얄팍한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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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아침 현대백화점 서울 신촌점 정문 앞.문을 열기도 전에 고객들이 줄을 섰다.
이 백화점이 창립 32주년 기념으로 일부 품목을 '32년전 가격'으로 판다는 전단을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문이 열리자 아줌마들이 달려 들어갔다.
셔츠 하나에 1천5백원,양말 한 켤레에 3백20원….평소 한 개를 살 돈이면 10개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점포에 할당된 물량(셔츠 1백20개,양말 1백켤레 등)은 순식간에 동났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겨우 몇 개 놔두고 사람 놀리는 겁니까." "사람만 끌어모으겠다는 속셈 아닌가요."
백화점측은 "행사 날짜와 품목 수량을 정확히 공지했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위야 어떻든 '고급을 지향한다'는 이 백화점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29일에는 롯데백화점 일부 점포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롯데는 수도권 점포에서 유명 브랜드의 넥타이(5천원) 셔츠(1천5백원) 등을 '24년전 가격'에 한정 판매했다.
롯데는 현대와 달리 30일까지 사흘에 걸쳐 매일 다른 품목을 내놓기로 했지만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허탕을 친 고객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롯데 현대 등 국내 대표 백화점들은 공교롭게도 24년,32년 전 가격에 물건을 파는 행사를 동시에 시작했다.
전례가 없는 깜짝 세일이다.
백화점들은 사은행사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고객을 끌어보겠다는 '얄팍한 상술'이란 사실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백화점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불황으로 매출은 9개월 연속 감소했고 웬만한 판촉행사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객들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줘서야 되겠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산업부 생활경제팀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