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증권업협회 대회의실.40여명의 증권·투신사 사장이 모인 긴급 사장단회의에서 오호수 증권업협회 회장은 느닷없이 '외화내빈(外華內貧) 증시'를 화두로 던졌다. 이날 회의 주제는 '부동산 투기자금의 증시유입 대책 마련'이었지만 대화의 근저에는 업계 내부에 공멸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종합주가지수가 700대 중반을 넘어 대세상승 양상을 보이는 데도 증권사의 실적은 악화되고 있다. 외국인이 증시를 주도하면서 외국계 증권사와 국내 증권사간 실적도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이날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의 진단이었다. 실제 국내 증권사가 소외받는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거래소시장 시가총액 21%를 차지하는 삼성전자.10월 들어 이 종목의 거래는 외국계가 주도했다. 지난 1일부터 28일까지 순매수 상위 10개 창구 중 국내 증권사는 한 곳도 끼지 못했다. 삼성전자 등 블루칩의 상승으로 증시는 활황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기관과 개인들은 오히려 시장을 떠나고 있다. 하반기 들어 지난 28일까지 거래소에서 외국인은 10조9천억원어치를 순매수한 데 반해 기관과 개인은 5조원씩을 순매도했다. 고객예탁금은 7월 초 10조3천억원에서 지난 28일 9조6천억원대로 감소했다. 그렇다고 이 자금이 투신권으로 흘러간 것도 아니다. 지난 2월 1백80조원이던 투신권 수탁고는 9월 말 현재 1백52조원으로 떨어졌다. 우리증권 신성호 상무는 "예년엔 주가지수가 700을 넘어서면 개인 투자자금이 증시로 몰리면서 추가 상승배경이 됐으나 올해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증권업계에서는 거센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현대증권은 최근 부차장급 50여명으로부터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한화증권은 지난 2월에 이어 최근 올해 두번째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세종증권은 현재 42개 지점 가운데 20∼25%가량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흥증권도 19개 지점 가운데 서초 경주 등 2개 지점을 폐쇄키로 했다. 동원증권은 온라인 위탁수수료를 거래금액에 관계없이 건당 7천원을 받는 정액제를 도입,업계의 살아남기 경쟁에 불을 붙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 실적에서도 나타나듯이 상승장임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주수입원인 위탁수수료는 줄어들고 있다"며 "중소형사 지점 중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밝혔다. 우리증권 신 상무는 "증권사에 돈을 맡기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불신이 수익 기반을 악화시키는 근본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