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치자금 관련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일체의 정치자금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한 것은 앞으로 정치자금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기업들로선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해 정치자금을 제공해왔지만 선거 이후 수사가 불거질 때마다 곤혹을 치르는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 근절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검찰이 SK그룹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수사에서 촉발된 정치자금 수사를 5대그룹으로 확대할 분위기 속에서 30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 간담회는 정치자금 개선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간담회가 끝난 뒤 발표한 성명서에서 "일부 기업이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돼 국민들께 실망과 좌절을 드렸다는 점에 대해 어떠한 꾸짖음과 질타도 달게 받겠다"고 국민들에게 우선 사과했다. 회장단은 그러면서도 "일부 기업의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치자금 논란이 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정치적인 사유에 의해 기업이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게 됨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재계는 깨끗한 정치와 건전한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개선책으로 △정치자금에 대한 수요 축소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 제고 △정치자금의 모금과 배분제도 변경 등을 강력히 요청했다. 회장단은 특히 "정치자금에 대한 제도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재계는 일체의 정치자금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조일훈·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