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가지되 조심스럽게,겸손하면서도 과감하게 변할 것입니다. 변화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하나의 과정이지 단순한 의지의 행동이거나 무아지경에 빠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결과가 일관성있게 지속될 수 있도록 대화와 협상을 통해 변화를 추구할 것입니다.' 브라질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59)가 올 1월1일 취임연설에서 한 말이다. 공장 노동자에서 1억7천만명의 국민을 이끄는 국가경영자로 변신한 룰라.그의 삶과 정치활동,앞으로의 과제를 담은 책 '브라질의 선택 룰라'(브리투 알비스 지음,박원복 옮김,가산출판사,1만2천원)가 출간됐다. 저자는 경제·사회학자이자 언론인. 룰라는 브라질 북동부의 작은 도시 카에테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집을 나갔고 상파울루로 이사한 그의 가족들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생활을 했다. 고사리 손으로 거리행상과 구두닦이 등 궂은 일을 다하던 룰라는 초등학교 중퇴 후 직업훈련소에서 수도선반공 일을 배웠다. 23세 때부터 선반공장에서 노조활동을 시작한 그는 7년만에 브라질 노조 중 최강인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세 번의 도전 끝에 브라질 연방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가 노동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바짝 긴장했다. 공약으로 내건 '외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이나 '디폴트(상환 불이행)'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과 화폐가치 하락,심각한 재정난으로 국제 금융시장은 더욱 얼어붙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서방세계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믿음직한 지도자'라고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취임연설에서 변화를 강조한 룰라가 친기업적이고 완만한 변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노동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포미 제로(기아퇴치)'운동 등으로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 앞장섰다. 이 책은 룰라와 브라질의 향후 과제도 하나하나 짚고 있다. 무엇보다 성장과 개발을 균형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급선무.이를 위해 믿음을 주면서 안정된 분위기로 투자자와 기업인을 끌어들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정책은 브라질 사회의 가장 큰 과제다. 엄격한 조세정책과 부채·금리 관리,중앙은행의 독립성 확보도 긴요하다. 정치개혁 또한 이슈 중의 하나.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법부 개혁과 법률개혁을 혼동하지 말라고 권한다. 구시대적인 인사와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 등 능률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대통령은 전임자들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면서 국민의 희망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해 험난한 자갈길을 헤쳐가야 한다는 충고까지 담겨 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노 대통령은 룰라의 방식을 배워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진정한 성취와 국민의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