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서울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유층에 대한 일부 경제적 소외계층의 '화풀이식'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신용카드 빚 등으로 과거보다 생활이 더 어려워진 소외계층들에게 강남 지역은 '집값 폭등으로 앉아서 떼돈을 번 동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들은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도매금으로 적대시되는 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부유층에 대한 '마녀사냥'식 적개심 표출은 사회 통합을 해치고 '부자 또는 성공한 사람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불러일으켜 '정당한 부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는 성숙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위험 수위 이른 부유층 향한 적개심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모 초등학교에 '일류병을 고치려면 강남 8학군 학생을 죽여야 한다'는 익명의 협박편지가 경남 마산시에서 배달됐다. 이 편지에는 "지방대 공대를 졸업했는데 취직하지 못했다. 이 나라는 일류대만 찾는 세상이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정치인들도 부패했다. 국회의사당과 타워팰리스를 폭파하겠다"는 글이 실려 있었다. 지난달 31일에도 강남의 다른 초등학교에 "음식에 독극물을 넣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 왔다. 올 9월 초에는 112 신고전화로 40대 남자가 수십억원대를 호가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모 아파트와 유명 놀이공원, 타워팰리스의 지하 헬스클럽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3시간동안 수색했으나 다행히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강남지역의 납치ㆍ인질 강도 사건도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범인들이 돈이 필요하자 '강남 사람들은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범행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강남주민들, 억울하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범죄가 빈발하자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강남주민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한 네티즌(ID '무서운 세상')은 인터넷 포털 다음 게시판에 "강남에 산다고 모두 부유하지는 않다"며 "강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강남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이 '반 강남정서'를 키우는데 한몫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을 강남과 강남 외 지역의 대립구도로 설정한 뒤 '강남은 투기지역=퇴치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갔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역삼동에 사는 김모씨(48)는 "잘못된 정책으로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강남 주민을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강남 사람 대부분은 투기와는 거리가 먼데도 '집값 폭등의 수혜자'로 몰아붙여 다른 지역과 위화감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15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이모씨(45)는 "월급을 모아 몇년전 집 한채를 마련한게 전부인데 투기꾼으로 매도당하는 건 억울하다"며 "일부 투기꾼 때문에 강남 사람 전체를 죄인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밝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착 시급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은 부유층이 조금 더 베풀고 양보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SK 비자금사건 수사에서 "부정한 돈을 받아 외국에서 빌딩을 산 사람도 있다"는 검찰 관계자의 언급이 나왔듯이 일부 정치인들이 권력을 통해 치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도 가진 자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부의 축적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기보다 대부분 부정한 수단에 의한 것이란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며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등 가진 자의 사회 기여가 적은 현실도 이런 인식을 퍼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