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街의 이단자 별명 .. 가난한 흑인 노예의 후손 오닐 메릴린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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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나는 투자은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인 스탠리 오닐(52)은 월가의 생리에 낯선 이단자다.
뉴욕타임스는 2일 월가에는 외톨이 같은 오닐이 메릴린치를 개혁하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리처드 그라소 전 회장을 쫓아내는데 앞장서는 등 월가를 흔들고 있는 파격적인 행보를 기획기사로 다뤘다.
오닐은 월가의 일반적인 CEO들과 달리 앨라배마주 로아노크에서 흑인 노예의 가난한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렵게 자라서인지 차갑고 엄격하다.
2001년 7월 CEO로 지명된 이후 무려 2만3천명을 내보냈다.
쫓아낸 경영진만 해도 19명에 달한다.
CEO가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토머스 패트릭 부회장이 자신을 이을 후계자를 선임하려 하자 단칼에 잘라 버리는 냉혹함을 보여줬다.
사회생활도 월가 스타들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오닐은 GM이 운영하는 케터링대학을 졸업한 후 GM의 십장으로 취직했다.
그 후 하버드 대학에서 MBA를 따고 뉴욕에 있는 GM의 재무본부로 옮겨 일하다가 메릴린치에 스카우트됐다.
메릴린치에서 고속성장을 한 그는 이익기반을 넓히기 위해 비용절감과 채권영업 확대 두가지에 승부를 걸었다.
국제영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온 전임 회장 데이비드 코만스키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오닐이 권한을 쥐면서 메릴린치를 떠났던 창업자의 아들인 윈드롭 스미스는 "오닐이 들어 선 이후 주식영업이나 자산관리 업무가 위축되고 금융 자문가도 7천명이나 감소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오닐 취임 후 메릴린치 주가는 무려 50%나 올라 증시의 환영을 받고 있다.
NYSE 이사들이 그라소 전 회장을 쫓아낼 때도 오닐은 그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다른 이사들처럼 그라소 전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면서도 정작 그를 쫓아내는 이사회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사회 멤버였지만 고급 클럽처럼 운영되는 이사회의 분위기가 싫었던 것이다.
오닐은 "나는 배타적인 클럽을 주도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원들은 오닐처럼 까다롭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CEO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그들에게 던지는 오닐의 한마디가 섬뜩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좋은 회사의 임원으로 앉아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