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코스닥 등록업체인 S반도체의 부사장 겸 기술고문으로 재직하던 일본인 K씨(67). K씨는 지난 2월 이 회사 영업이사로 근무하다 경쟁업체인 A사로 전직한 이모씨(45)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연봉 8천만원에 주택도 제공해줄테니 S반도체의 핵심기술인 백색 발광 다이오드(LED)기술 자료를 빼내 넘겨달라는 것.평소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K씨는 이씨의 요구를 받아들여 2년동안 동종업계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계약조항까지 어겨가며 지난 3월 A사로 직장을 옮겼다. K씨는 전직 보름만에 자신이 빼돌린 S반도체의 백색 LED 제조공법에 대한 기술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A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처럼 특허까지 출원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백색 LED에 대한 독자적인 제조공법을 개발,연 1천2백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려왔던 S반도체는 1천억원 규모의 매출감소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반도체 부사장 K씨와 전직 영업이사 이씨는 3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이창세 부장검사)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최근 S반도체의 경우처럼 휴대폰과 반도체 핵심기술 등을 보유한 기업들에서 기술유출로 인한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초 일어난 LG전자와 단말기 제조업체인 팬택과의 분쟁.당시 LG전자는 자사 연구원들이 퇴사하면서 휴대폰 관련 기술자료 등을 가지고 경쟁사인 팬택으로 이직,1천여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이들에 대해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지난 7월 서울지검은 LG전자에서 이직한 팬택 연구원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LG전자측이 항소를 고려중이어서 양사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벤처기업인 벨웨이브간 분쟁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0년 벨웨이브로 자리를 옮긴 전 직원인 전모씨와 김모씨가 휴대폰 관련 핵심기술을 빼돌렸다며 벨웨이브측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법원에서 당시 사건 관련자 10명에 대해 징역 3년에서 벌금 3백만원에 이르는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현재 이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 6월 벨웨이브를 상대로 휴대폰 기술 유출과 관련해 1백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밖에 지난 6월 현대모비스의 전직 간부가 현대오토넷의 기술·인력 등을 빼내 별도 회사를 만들어 오디오·비디오 시스템,항법장치 등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려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처럼 산업스파이가 많아지자 정부와 기업들은 관계법령 정비와 기업 내부감시시스템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허청은 기업의 영업 비밀을 빼내 국내·외로 유출하는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내달초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처벌에 따른 '예상손실'보다 법망을 피해 성공했을 경우 더 이득이 크다는 '한탕심리'로 인해 이같은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산업보안연구소 김종길 소장은 "정보화로 인해 사무환경 자체가 '정보 도둑질'에 취약하게 바뀌었는데도 경영 마인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스파이를 막기위해선 핵심기술 개발자나 이를 관리하는 담당자에 대한 '적극적 관리'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