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이 나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느낀 감상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는 점에서 이전 시집들과 다르다. 독자들은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이 아닌,시를 읽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이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보여준 삶과 화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세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은 이번 시집에도 이어진다. 시인에게 온갖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생의 풍경은 처연하면서도 속되다. 생을 거듭 살아도 생명 가진 것들의 운명은 변함이 없으며 초월이나 결정적인 구원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의 무서운 새가 내 어머니 물고 간다. 울다가 웃다가 짓던 옷마저 못짓고,내 어머니 절도 못받고 간다. 차갑고 푸르던 하늘 둠벙에 어머니 잿빛 머리카락 가득한데,어머니 꺾인 목은 누가 세우나,비틀려 굳은 다리 누가 펴주나.'('짓던 옷 마저 못 짓고' 중) 시집에는 유행가 가사,동네 테니스경기장 등 시인의 소소한 일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고 남루한 일상에서 시인이 포착하고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은 세상 속에서 헐벗은 자아가 겪는 불화와 절망,치욕의 고통이다. 영동대교를 지나면서 트로트 가요 '비 내리는 영동교'를 흥얼거리고 일흔일곱살 동네 할머니와의 테니스 게임에 좌절하는 그저그런 삶 속에서 시인은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절해고도의 섬처럼,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 막막한 생의 쓸쓸함을 본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을 때처럼 내 글쓰기가 지나친 갈망과 절망으로 울컥거리기만 할 때,평소 좋아하던 다른 시에 말붙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