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마련을 위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전문적 지식 등을 이용하는 '생계형 지능범죄'가 올들어 급증하고 있다. 친인척들을 상대로 한 사기나 회사 재물 횡령은 물론 악덕 대부업자나 카드깡업자와 결탁했다가 한순간에 범죄자로 전락하는 '고학력 돌발범죄'도 늘고 있는 추세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지능범죄는 지난 2000년 9천5백9건, 2001년 8천6백52건, 2002년 9천1백81건에서 올해는 지난 9월까지 8천33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월평균으로 볼 때 지난해보다 17%가량 증가한 것이다. 경찰은 이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연말까지 1만건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과 관계자는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평범한 시민들이 많다"며 "특히 전문대 재학 이상의 고학력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구에 사는 30대 회사원은 카드빚을 갚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한 것처럼 카드깡업자와 서류를 위조, 7백만원을 대출받았다가 '여신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업자와 함께 입건됐다. 또 지난달 수도권 편의점과 슈퍼에 음료를 납품하는 모음료 회사는 자체감사 결과 수금담당 직원 10여명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이들 중 일부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들은 수개월간 장부를 교묘히 조작, 대리점에서 수금한 돈을 미수금으로 처리한 뒤 수금액의 10%가량을 빼돌려 카드빚 변제와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달아났던 계약직원 1명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선처를 빌어 소취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생계형 범죄가 점차 지능화 고학력화함에 따라 경찰청은 우선 1단계로 경제적 궁핍자를 상대로 한 사설대부업이나 속칭 '카드깡'에 대한 단속을 강화,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유사수신행위 등 금액은 작으면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는 사기ㆍ횡령범죄에 대한 수사도 강화할 방침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생계형 지능범죄는 불황에 따른 현상으로 처벌 위주의 단속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해결이 우선책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경찰대학교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는 "평범한 시민들이 순간적인 상황에 의해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채권채무관계 사건일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ㆍ조정 등을 통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을 가능한 한 막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도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리지침을 마련, 범죄자 양산을 예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