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취업, 창업 그리고 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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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0(ten,ten,ten)'이란 말이 있었다.
10년 고생해 집 사고,10년 모아 아이들 교육 시키고,또 10년 벌어 자식들 시집·장가 보낸다는 직장인들의 '인생 공식'이었다.
남자로 20대 중반에 회사에 들어가 50대 중반까지 30년 일하면 이 공식에 따라 인생 계획을 잡아갈 수 있었다.
퇴직금을 그대로 묻어둬 연금으로 나눠 받게 되면 은퇴한 이후에도 부부가 밥 먹고 살면서 가끔씩 손자 용돈 정도는 줄 수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한 직장에서 승부를 거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이 시나리오는 이제 마지막 10년을 빼고 '10.10'으로 바뀌었다.
10년 모아 집을 사고,또 10년 벌어 아이들 교육을 마칠 때쯤이면 이제 첫 직장에서는 끝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대책이 별로 없다.
가정에도 위기가 온다.
직장에서 내밀린 부모나,아직 직장을 잡지 못한 자식들이나 서로 도와줄 형편이 못된다.
능력이 보통밖에 안되는 부모라면 이제 자식들을 위한 거창한 신혼집,그럴듯한 혼수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퇴직금까지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보니 자식들 시집·장가는 고사하고 부부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막막해서다.
냉정하게 말해 보자.이제 자식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또는 대학만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는 사회적 관행을 만들어야 옳지 않은가.
그런 장치 없이는 부모 세대나 자식 세대나 모두 공멸할지도 모르는 사회적 위기 앞에 우리는 서있다.
현실은 어떤가.
학비는 당연하고 취직할 때까지 매달 용돈에다 이미 필수가 된 해외배낭여행,심지어 유학까지 부모들이 책임지고 있다.
그걸 못하면 부모 대접도 받기 어렵다.
엊그제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나라 남자가 68세,여자가 67세까지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통계로는 놀랍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는 은퇴하고 싶어도 은퇴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집이나 자식 교육,노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형편이 괜찮은 축에 속한다.
아직 직장문도 열어보지 못한 청년들,그리고 새파란 나이에 직장에서 내몰린 실업자들 눈에는 행복한 고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청년실업자는 32만명.이들을 포함해 전체 실업자는 모두 73만명에 달한다.
공식적인 것만 그렇다.
부자들만을 노린 연쇄 살인 사건,강남 초등학교에 배달된 협박 편지 등은 갑자기 사회적 소외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병적 심리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2003년 겨울의 초입.지금 대한민국 보통 국민들이 하고 있는 고민은 특이할 것도 없다.
취업 창업 실업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언제 목돈을 모아 독립할지,어떻게 자식들 키워 결혼시킬지, 어떻게 은퇴 후 일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창업,실버박람회에 인파가 넘치는 건 이 때문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아침마다 시커먼 활자로 업데이트되는 정치뉴스를 읽어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욕나오는 현실이다.
국민들이 어떤 고민으로 밤을 지새는지 관심조차 없는 정치인들에게 왜 우리는 이토록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경기가 바닥을 모르고,노사분규는 겨울에도 이어지고,세계 정세가 어수선한 현실에서 희망 없이 겨울이 온다.
취업,창업,실업의 문제는 올해도 해결의 가닥을 보이지 않고 지나가려는가 보다.
전문위원·한경STYLE 편집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