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됐다고 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옛날 그 스님 그대로인데 두메산골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대한불교조계종의 전국비구니회 새 회장으로 최근 선출된 명성 스님(明星·74)은 지난 7일 경북 청도 운문사에서 이런 인사말로 기자들을 맞았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운문사는 2백60여명의 사미니(여자 예비승려)가 공부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비구니 교육도량.운문사 승가대학장인 명성 스님은 지난 70년부터 지금까지 2천명 이상의 제자를 길러냈다. "운문사는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지만 일과 수행이 따로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백장청규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이 채소 농사를 짓느라 '여기가 농과대학이냐'는 농담도 하지만 시주들의 은혜에만 기대서는 안될 일이지요." 명성 스님은 최근 비구니의 종단내 위상과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현실적으로 비구·비구니간 우열이 없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전하는 사명감에는 우열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52년 해인사로 출가해 평생을 공부와 일로 살아온 명성 스님은 "卽事而眞(즉사이진)이 수행"이라고 했다. 모든 일에 있어 참되게 살아가는 것,꽃을 가꾸고 마당을 쓸 때에도 참되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설명이다. "하느님은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어요. 길을 가다 '하느님!' 하고 불러보세요. 하늘 위가 아니라 사람이 들끓는 시중에서 대답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슴 속에 있고 우리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이기 때문이지요." 자리를 파하며 덕담을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스님은 추사 김정희의 부친(김노경)이 초의선사에게 준 다시(茶詩)를 들려줬다. '無窮山下泉 普供山中侶 各持一瓢來 總得全月去(무궁산하천 보공산중려 각지일표래 총득전월거·다함이 없는 산 아래 샘물을/산중 벗들에게 널리 공양하노니/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가져와/모두들 온 달을 하나씩 가져가게나)'스님은 '달'이 무엇인지는 '물음표'로 남겨두라고 했다. 운문사를 둘러싼 호거산(虎踞山) 위로 마침 동안거 결제일(8일)을 앞둔 '온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청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