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례대표제가 답이다 .. 李來榮 <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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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정치개혁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치권이 완전 선거공영제,지구당 폐지 등 대폭적인 정치제도 개혁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했고,앞으로 협상을 통해 국회 차원의 정치개혁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검찰의 대선 비자금 수사가 확대되면서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된 정치권이 어쩔 수 없이 정치개혁안을 내놓은 것이라 하더라도,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의 정치개혁 요구에 대해 미온적이던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금의 형국은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쏟아내는 정치개혁의 방안들은 효과와 실현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이 졸속으로 제시되고 있는 느낌이다.
지구당 폐지,선거공영제 등이 고비용 정치를 탈피하기 위한 획기적인 개혁안이라는 점은 틀림없지만 과연 의도하는 제도적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개혁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기 때문에 개혁안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정치권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정당의 지역별 의석독점 현상을 약화시켜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 선거비용이 줄어든다는 논리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의 완화 효과는 있겠지만,기성정치인들의 재당선과 파벌정치를 조장한다는 점에서,그리고 선거비용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중대선거구가 되면 한 정당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공천해서 정당 내부의 파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또 중대선거구제에서는 기성정치인의 재당선이 용이하고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이 높다.
나아가 선거구가 커지면서 선거비용이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했던 일본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금권정치와 파벌정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1994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금의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병립제로 대치했던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소선거구 지역구와 비례대표제가 1 대 1,혹은 적어도 2 대 1이 되도록 비례대표제를 확대·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거제도의 개혁방안이라고 판단된다.
현행 소선거구 지역구제는 단순명료하고 정치적 책임소재가 분명한 것 등 장점도 있지만 의원들의 정책전문성의 부족,지역주의의 고착,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의 과점구조 유지 등의 폐해가 크다.
반면 비례대표제는 정책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을 충원할 수 있고,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의 부담이 없이 정책개발과 입법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원은 지역구 차원의 선거경쟁이 없기 때문에 선거비용도 줄게 되고,정당정치도 활성화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비례대표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정당의 민주적 공천과정의 제도화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명부를 작성하고 정당투표에 의해 의원을 선출하기 때문에 정당이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들을 공천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과거 전국구 공천처럼 계파간의 나눠먹기나 공천헌금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권이 모처럼 정치개혁에 합의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치개혁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정치권이 개혁안을 정국 주도권 싸움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개혁의 방향이 정당간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범국민정치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선거제도 정치자금 정당체제 등 일련의 제도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진지한 노력이 공멸의 위기에 처한 정치권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