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펄프 픽션'에서 내면의 폭력성을 충동적으로 분출시키는 인간군상을 충격적으로 그려내 영화사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독립영화를 탄생시켰다. 그는 신작 느와르 액션 '킬 빌 Vol.1'에서 '펄프 픽션'과 달리 고도로 훈련된 캐릭터들이 철저히 계산된 무술로 폭력을 표현하도록 연출했다. 타란티노의 영화 중 최대 물량을 투입한 블록버스터이자 가장 잔혹한 작품인 이 영화에선 서부영화를 비롯 홍콩 느와르, 쿵후 액션 및 사무라이영화에 등장했던 무차별적 총질과 거친 무술,잔인한 칼싸움을 총동원한 '폭력의 성찬'이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해체해 재구성한 양식이나 풍부한 유머를 곁들인 모습 등에선 타란티노 특유의 색채도 보인다. 영화의 줄거리는 자신이 몸담았던 청부살인 조직으로부터 총탄 세례를 받고 혼수상태에 들어간 여성 조직원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5년만에 깨어나 두목 '빌'과 동료였던 오 렌 이시이(루시 리우) 버니타 그린(비비카 A 폭스) 등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무시한 채 표적 제거 장면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에 스토리는 별 의미가 없다. 폭력의 동기로 복수심을 내세웠지만 이 또한 심리적인 면에서 깊이 고찰되지 않았다. 대신 폭력의 중심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와 성격을 전면에 내세운다. 빌을 제외한 주요 캐릭터들은 여성이며 주요 격투 신도 여성들에 의해 이뤄진다. 남성들은 여성의 공격으로 제거되거나 새디스트 혐의자,어린이와 섹스를 즐기는 이상 성욕자,혼수상태의 여성을 강간하는 변태로 묘사될 뿐이다. 두 여전사들이 혈투 도중 어린이가 나타나자 돌연 멈추거나 모기에 물리는 순간 여주인공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십대 보디가드의 엉덩이를 칼등으로 때려 살육극에서 내쫓는 모습 등은 남성 중심의 액션에선 발견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이는 황당한 상황에서 남성들보다 진지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여성성을 극대화한 에피소드들이자 웃음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또 선명한 대립각을 부각시키기 위해 원색들을 사용한 것도 타란티노 감독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21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