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각 가격협상 과정에서 협상카드용으로 '비리공개'를 암시하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면 이는 비리의 사실 여부를 떠나 형법상 '공갈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정덕모 부장판사)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저질러진 대기업 H사와 H사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말을 들먹이며 주식을 비싼값에 사달라고 요구한 혐의(공갈미수)로 기소된 회사원 정모씨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H사에 다니던 친지를 통해 비리의혹을 입수한 뒤 시민단체가 공표하기 전부터 이를 거론하면서 매입가격의 30배에 주식을 사 달라고 압력을 행사한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지난 97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H사 전체 주식의 1%가 넘는 10만주를 1천원대에 매입한 뒤 2000년 5월께부터 6차례 H사 직원을 만나 "부도난 재벌기업이 1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모럴해저드가 심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매입한 주식을 주당 3만원에 되사줄 것을 요구한 혐의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