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은 요즘 정신이 없다. 지난 1일 제조업체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자 수많은 기업들의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실시과정,효과 등 일일이 응대하기 힘들 정도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전선의 임금피크제가 기업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제조업체 첫 사례이기도 하지만 실시 방법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 평균 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을 전원 퇴직시킨 뒤 재입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임금을 근로자 개인당 최소 10%에서 최고 30%까지 삭감했다. 대한전선 임금 피크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적용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임금피크제는 정년은 보장하되 일정 연령이 지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만큼 임금을 동결하거나 줄여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연령이 아닌 모든 생산직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했다. 기준이 된 평균임금(피크)은 일급 3만1천원. 하성임 기획담당 상무는 "사무직과 달리 생산직은 잔업 특근 등으로 인한 수당이 임금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해 하루 받는 임금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일급 3만1천원을 받는 생산직의 임금을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4천만원. 전체 생산직 4백80명 가운데 50% 가량인 2백40명이 여기에 해당됐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적용 대상 직원이 모두 퇴사한 뒤 다시 입사한다는 것. 재입사할 때는 회사와 협의를 통해 기본급이 깎이게 된다. 생산직 2백40명은 지난달 31일자로 회사에 사표를 쓴 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까지 기본급을 삭감하는 데 동의하고 다음날인 이달 1일자로 재입사했다. 특히 이미 50세가 넘은 30여명은 대부분 기본급을 최대 30%까지 줄이고 앞으로 3년 뒤 피크임금을 재조정할 때까지 임금을 더 올려받지 않기로 했다. 아직 50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역시 기본급을 낮추고 앞으로 임금이 일정액(피크임금)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 다만 상여금은 최소 현재의 수준(연 9백%)을 유지하고 성과급은 매년 임금협상 때마다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퇴직금은 재입사한 시점부터 계산해 받게 된다. 대한전선은 이같은 임금피크제를 오는 2006년 4월30일까지 시행한 뒤 향후 피크임금을 조정키로 했다. 물론 생산직 절반은 일단 퇴직시키면서 퇴직금에 더해 위로금을 줬다. 노사 모두 위로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결코 큰 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회사측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고 노동자들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한전선은 이번 제도 시행으로 연간 25%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생산직에 지급되는 임금이 2백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매년 80억원,이 제도가 시행되는 3년 동안 모두 2백40억원의 비용이 줄어드는 셈이다. 특히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된 2백40명의 기본급이 삭감됨에 따라 상여금과 성과급의 액수도 함께 줄어들어 비용절감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노조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을 털어내고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노조 관계자는 "만약 회사를 떠나게 되면 현재의 임금수준을 받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당장 임금은 줄었지만 정년인 만 57세까지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 상무는 이런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노사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의 주력부문인 전선사업의 매출이 최근 2년 동안 20% 가까이 떨어졌다. 하지만 연공 임금제를 오래 유지하다보니 직원들의 임금수준이 높아져 신설회사와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배경을 밝혔다. 회사측 입장만을 따지면 임금을 줄이는 것보다는 인력을 줄이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만 노조가 제도 도입에 동의해 합의점을 찾았다는 설명이다. 노조측 역시 같은 의견이다. 조병철 노조위원장은 "고령자들이 고용만 보장되면 임금을 낮출 용의가 있다고 해서 최종 합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