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권사들이 업무다변화의 일환으로 일임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종합자산관리계좌)서비스를 시작했다. 그간 일임매매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매우 제한됐는데, 2001년 9월에 제한적으로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허용된데 이어 올해 전면적으로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확대된 것은 증권업계로서는 큰 진전으로 본다. 그러나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논의됐던 몇 가지 사항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 우려로 남는다. 국내 증권사의 일임형 랩어카운트 상품은 고객과 증권사가 투자일임범위와 대상을 명시한 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즉 증권사 창구직원인 FP(파이낸셜 플래너, Financial Planner)가 독자적으로 고객의 자산을 여러 개의 주식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주식매매에 대한 주문은 계좌별 주문으로 한정됐다. 문제는 여러 계좌의 주문을 통합해서 내도 전국의 수천개 증권사 점포에서 이뤄지는 거래행위를 감시감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랩어카운트가 실질적으로 통합운용된다면 사실상 투신사 펀드와 동일한 구조가 되므로 펀드운용에 부과되는 투자자보호장치 및 감시감독체계의 필요성이 당연히 제기돼야 한다. 고객입장에선 자산운용을 맡게될 FP가 과연 운용전문가이며 과거 증권사 창구에서 발생했던 위임매매후 손실을 둘러싼 분쟁과 같은 위험요인이 없느냐 하는 것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증권사가 자기계정에 갖고 있는 부실자산을 고객계좌에 옮겨놓을 가능성 등 여러 형태의 불공정거래에 대비한 감시감독체계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불안하다. 펀드를 운용하는 투신사나 자산운용사는 대우채 사태 이후로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수탁제도, 회계감사, 분산투자 요건 등 자산의 관리 및 운용에 대해 엄격한 감독을 받고 있다. 펀드매니저의 자격요건도 까다롭고 운용과 관련해서도 위험분산을 위해 동일종목을 10% 이상 편입하지 못한다거나 계열사 유가증권 투자제한 등 여러 가지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거치도록 돼있다. 이처럼 엄격한 감독체제하에서도 올해초 SK글로벌, 카드채 사태로 많은 투자자들이 이탈한 바 있다. 만약의 경우 일부 증권사 또는 일부 FP의 잘못된 운용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거나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면 이는 일임형 랩어카운트를 관리한 증권사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임매매업이나 간접투자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수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랩어카운트는 매우 조심스럽게 시작돼야함을 알 수 있다. 75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랩어카운트 시장은 90년대 들어 급속히 성장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증권사 직원이 아니라 비계열 자산운용업자가 운용을 전담하는 컨설턴트랩(Consultant Wrap)의 비율이 41%를 넘는다. 국내증권사처럼 증권사 직원이 직접 운용하는 직원일임 운용랩은 9%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직원일임 운용랩의 비율이 낮은 이유는 증권사 직원의 운용실패나 불법운용에 따른 신뢰상실이 투자은행업무 등 주요 사업수행에 악영향을 줄 것을 고려해서이다. 따라서 국내증권사들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임매매와 같은 간접투자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일임형 랩어카운트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고객이 안심하고 가입할수 있도록 기존의 펀드에 상응하는 감시장치가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지나친 규제가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본질에 역행된다면 현 단계에선 증권사가 랩어카운트의 설정자 역할을 하고,계약자산의 운용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외부 운용사에 위탁하는 컨설턴트랩의 형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충분한 제도적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운용되면 오히려 증권사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랩어카운트 시장 및 간접투자시장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hahyunjo@dreamwiz.com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