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단풍 .. 김주형 < CJ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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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kim@cj.net
11월이다.
절정을 이루던 단풍도 얼마 전 내린 비로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다.
회사가 남산에 있어 업무중 간간이 창 밖을 보면,시내 오피스타운에서와는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봄에는 눈꽃마냥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시작해 진달래와 개나리 순으로 이어지는 화무(花舞)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여름에는 점점 짙어지며 미묘하게 변하는 녹색의 기운이 계절의 바뀜을 알린다.
하지만 자연이 보여주는 가장 황홀한 광경은 뭐니뭐니해도 가을 단풍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차로 북적거리던 도심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로 운치있는 거리로 변하고,온 나라를 울긋불긋 물들이는 물감폭탄 세례에 사람들 마음은 집시처럼 안절부절못하고 들뜨고야 만다.
단풍이 든 산은 왜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하릴없이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도 초록과 노랑 빨강 주황 갈색으로 이어지는 색색이 서로를 아우르며 때로는 남보다 더 돋보이게,때로는 남을 더 돋보이게 하면서 조화를 이뤄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한 수종(樹種)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아름다움이 인공적으로 계산된 어떤 의도적 배합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것은 인간 자체가 자연의 일부라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단풍의 상념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보면 획일화의 기로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하나의 잣대로 대상을 평가하고,단순한 논리가 환영받는다.
다양한 사람과 어우러져 살기보다는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한정된 공간에서 교류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다.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단풍으로 치자면 이쪽에는 노란 단풍,저쪽에는 붉은 단풍 식으로 나눠져 있는 셈인데,상상만 해도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천편일률적인 구성원으로 이뤄진 회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장점을 갖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회사라는 그릇 속에서 서로 융합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긍적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조직은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산이 아니라 오랫동안 퇴적돼 굳어버린 단층(斷層)에 불과할 것이다.
단층과 같은 사회,단층과 같은 기업….
그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으며,어떻게 '우리'를 위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단풍의 미덕을 한번쯤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