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이 제나라에 있을 때 그의 집에는 많은 식객이 있었다. 하루는 맹상군이 식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누가 회계에 능하오? 설 지방 백성들에게 돈을 많이 빌려줬는데 회계 잘하는 사람이 그 돈을 받아오면 좋겠소이다." 그러자 식객 풍난이 자기를 보내달라고 했다. 풍난은 설 지방 백성들을 찾아가 한사람씩 불러 채무계약서를 일일이 확인한 뒤 맹상군의 명령이라며 채무계약서를 다 돌려주고 일제히 불태우게 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소리 높여 '맹상군 만세!'를 외쳤다. 풍난이 돌아왔다. "빚은 다 받아오셨는가?" "예, 다 받아왔습니다." "그럼 그 돈으로 무슨 물건을 사왔는가?" 풍난이 대답했다. "어르신께서는 어르신 댁에 없는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어르신 댁에 부족한 것은 오직 인의(仁義)뿐입니다. 그동안 어르신은 그 지방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푸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이 어르신을 칭송하니 이것이 바로 제가 사 온 인의입니다." 1년 뒤 맹상군이 왕의 의심을 사 설 지방으로 좌천됐을 때 백성들이 1백리 밖까지 마중나와 환영하는 것을 보고 맹상군은 "선생이 사온 인의를 오늘에서야 보는구려"라고 말했다. 최근 나온 '지경(智經)'(풍몽룡 편저, 홍성민 옮김, 청림출판, 1만9천5백원)의 '상지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명대의 뛰어난 대중 작가 풍몽룡의 '지낭'을 원전으로 삼은 중국 지혜의 경전. 청대 고전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돼 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와 기업의 경영뿐만 아니라 숨가쁜 비즈니스ㆍ협상, 조직관리와 리더십, 인재발굴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책 속에는 요순시기부터 명대말까지의 중국 역사 속에서 배울만한 이야기들이 28개 분야로 나뉘어 실려 있다. 위대한 인물들의 지혜가 '상지부'에 실려있고 설득과 담판의 노하우는 '어지부', 민첩한 상황판단과 대처능력은 '첩지부'에 담겨 있다. 외교와 병법에 관한 것은 '병지부'에 들어 있다. 중국 사회를 바꾼 여성들의 지혜도 '규지부'에 소개돼 있다. 자신을 비방한 부하를 용서함으로써 큰 지혜를 발휘한 얘기들도 많다. 곽진이 산서성에 있을 때 장수 하나가 자신을 모함했는데 황제가 이를 알고 곽진에게 직접 처단하도록 했다. 마침 흉노족이 쳐들어오자 곽진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를 비방한 걸 보니 담력이 대단한 놈이구나. 네 죄를 사면해 줄테니 나가서 흉노족을 무찔러라. 그러면 조정에 천거할 것이고 패한다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내 칼을 더럽히지 마라." 장수는 용감하게 싸웠고 결국 크게 승리했다. 이 책에는 작은 지혜로 큰 소득을 올리는 장사법이나 소인배들의 간사함을 뒤집어보는 '역발상의 지혜'도 들어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