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미(對美) 구매사절단은 지난 12일 6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제품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항공기 엔진, 보잉사의 항공기, 제너럴 모터스(GM)의 캐딜락을 비롯한 고급승용차 등을 대량 구매키로 했다. 도널드 에반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GE와 보잉사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국민 모두의 '큰 승리'"라고 말했다. 미국은 올해 1천3백억달러로 예상되는 대중 무역적자를 이유로 중국에 위안화 평가절상 및 시장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중국의 미국제품 대량구매는 이처럼 이중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내달 초 원자바오 (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미를 앞둔 사전정지 작업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구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이상의 실리를 챙기려는 속뜻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의 구매사절단장인 장궈바오(張國寶)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은 항공기 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 스스로 차별적인 대중국 수출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산 제품 수입을 확대하고 싶지만 미국의 규제 탓에 오히려 미국기업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 등 일부 첨단기술의 군사기술 전용을 우려해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그는 "중국이 이미 만들 수 있는 첨단제품도 미국의 대중 수출제한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중국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우방 한국으로서는 선뜻 귀에 들어오지 않는 '수출규제 철폐'. 미국의 요구를 일견 들어주는 듯하면서 중국은 불공정 이유를 내세워 실속을 챙기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