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나이 40세를 불혹(不惑)이라 부른다. 더 이상 갈팡질팡하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세웠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마흔이 돼도 좀체 불혹의 경지에 들기가 힘들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PC방 엑스사이트(X-SITE)를 운영하는 이진호씨(41). 이씨는 지난해 4월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1987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후 전자랜드 창립 멤버로 합류,국내 가전시장에 '양판점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주역중 한명이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직함은 컴퓨터사업부장 겸 매입총괄본부장. 회사내 서열이 '다섯손가락'안에 들었던 그의 퇴사는 한동안 화제가 됐다. "비대해진 조직속에서 한계에 부딪쳤고 이젠 내 사업을 직접 꾸려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는게 사표의 변. 그는 PC방 창업을 준비하는 가운데 국내 한 중소기업이 만든 벽걸이TV의 국내 총판업부터 시작했다. 얼마후 총판업을 관두고 PC방 창업에만 매달렸다. 이씨가 PC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4∼5년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PC방을 상대로 제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PC방은 경쟁이 극심해지고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2000년을 분기점으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씨는 PC방이 쇠퇴기로 변하자 오히려 '기회'와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이런 안목은 변화무쌍한 전자유통시장에서 15년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대가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PC방이 초중고생 뿐만 아니라 성인남녀들이 공유할 놀이 및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따라 30∼40평 규모의 생계형 PC방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상황이었다. 발상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했다. 그는 PC방의 고급화,복합화,대형화로 사업 방향을 잡았다. 이씨는 "사업과 시장이 파악되면 비용을 줄이는 경영을 할지,매출을 올리는 경영을 해야 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경영방침을 후자로 정하고 화끈하게 투자했다. 3층 건물에 있던 40평짜리 PC방을 인수,바로 옆 60평의 가정집을 터버리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일단 신사동에서 최고로 큰 PC방 점포를 확보했다. 실평수 1백평에 달했지만 고급화를 위해 PC 운영대수를 74대로 한정했다. 쾌적한 점포를 꾸미기위한 첫 걸음이었다. 또 티끌만한 먼지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바닥을 최고급 자기타일로 깔았다. 갈비집에서나 쓰는 환기시설 '닥트'를 천장에 설치하고 환풍팬과 3대의 공기청정기를 추가로 달았다. 출입구는 자동문으로 교체하고 책걸상 PC 등도 최고급 사양으로만 꾸몄다. 성인층 취향을 고려해 점포 중간지점에 테이크아웃커피숍을 차렸다. 시중의 절반가격에 서비스되는 커피숍 수입도 제법 짭짤하다. 이씨의 전략은 주효했다. 지난 7월5일 개점후 이제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매출실적이 놀랍다. 현재 유료회원수는 2천1백여명. 지난달 하루 평균 매출(시간당 1천원의 PC이용료)이 85만원에 달했다. 여기다 커피숍 매출이 하루 평균 20만원. 지난달 31일을 꼬박 문을 열어 3천2백55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임대료,전기회선사용료,온라인게임비,종업원 인건비(직원3명,아르바이트3명)등 일체 비용을 제하면 순이익이 1천5백만원 정도 됐다. 성수기인 방학때는 매출이 보통 20%정도 증가한다. 최근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가 전국 PC방을 상대로 한 사용량을 체크한 결과 엑스사이트(X-SITE)는 전국 31위,서울시내 5위를 차지했다. 이 사장의 창업이 '탁월한 선택'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02)382-1055 글=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