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정철학의 새 지평..全哲煥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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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나 추락하던 경기가 지난 9∼10월에 저점을 지난 것 같다.
9월부터 재고는 줄어들고 생산이 늘어나는 것이 그 징후이다.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있으나 '4분기 경기바닥'이라는 예상보다는 2∼3개월 앞선 것이다.
올 성장률도 2%대에서 3%대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저금리와 확대 재정, 그리고 미국 일본 EU 등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수출과 생산을 이끌어준 덕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활황세를 보이면 모든 계층간에 갈등이 줄어들고 사회통합도 이루어져서 경제의 역동성과 잠재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번 경기 회복세에서 이런 기대를 하기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뒤따를 것 같다.
먼저 산업별 기업규모별로 경기가 회복되는 정도의 격차가 큰 데다가 경기 후행 산업에서는 회복세와 고용증가 파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실종될 우려가 있다.
수출 대기업을 뺀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은 단순 기능노동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소비수요의 회복이 지체돼 빠른 활황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부문에 많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서민 대중은 경기회복 수혜가 지지부진하거나 미미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책 기조는 아니지만 내수기반 없는 외연(外延)성장의 산업 다극화가 빚은 결과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부실 금융회사와 기업, 부동산 버블과 금리 환율 등의 급변, 가계부채와 카드채 부실 때문에 시스템 위험, 시장위험, 그리고 신용위험에 노출될 개연성이 높다.
경기호황이 위험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겠지만 아직 위험관리 의식과 기법이 취약한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사회 경제적인 격차와 위험을 줄이는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갈등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조화하고 부작용을 줄여서 역동성을 높이는 힘은 평등을 중추원리로 하여 공화(共和)를 추구하는 정치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정교하고 세련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이를 뒷받침할 정치력이 필요하다.
사회구성상 경제는 효율 추구 때문에 계층별 기능 차별성이 빚는 격차를, 문화는 자아실현 지향성 때문에 개성과 가치선택의 다양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해와 타협, 그리고 조화능력을 잃으면 아노미성 갈등을 야기한다.
이해와 타협, 그리고 조화력은 그 사회가 지닌 발전적 시대정신과 수준 높은 정치력에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치력이 없다.
부정으로 얼룩진 정경유착은 국민들로부터 정치인과 기업인 모두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앗아간다.
급진 원리주의 집단에는 갈등 유발의 원인을 제공한다.
참여정부 출범은 이런 정치의 역작용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 발전의 역동성을 살리는 좋은 기회였다.
민주화와 높은 기개를 지닌 집권층은 개혁과 대중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국정은 대증요법과 세련되지 못한 행정력, 그리고 감성적 대응에 머물러 시행착오와 불확실성,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새 국정철학 가운데서도 경제는 '부총리에게 권한과 책임을' '어떤 계층 일방에 대한 친 선호의식' 수준에 머물러서는 결코 정책의 효율을 얻을 수 없다.
과학기술자 등 지식인과 가진 자까지 어우르는 대통합 이념과 강한 추진력을 지녀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민(people) 또는 대중(mass) 만으로는 국민의 정서적 통합이 불가능하다.
그런 새 정치이념은 '국민정치'일 수 있다.
이제 조화와 대통합의 국민정치 이념을 구축해 새 정치 틀을 마련하고 경제의지와 잠재력을 살려 경기활황을 지속할 때다.
어차피 '발전은 사회경제체계의 총체적 상향운동'이고, 현대에는 경제만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전 한국은행 총재 chchon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