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감사원장이 '무사안일한 공무원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을 뛰게 해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일으켜보자는 의욕의 발로이겠지만,2∼3년 전 기자가 한 선배에게서 들은 얘기를 떠올려보면 반대의 결과를 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벤처기업을 하던 선배는 몇 년을 투자해 게임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그 해 정부와 관련 단체가 수여하는 각종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를 상업화하는 단계에서 정부가 내린 판정등급은 '중학생이하 이용불가'였다. 게임의 가장 큰 고객들에게 판매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은 것.그 선배는 허탈하게 웃으며 "제발 공무원들은 가만히 있어 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새롭다. 해당 공무원들은 나름의 소명감을 갖고 일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한 벤처기업의 싹을 자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던 셈이다. 지난해말 정부개혁을 평가한 공식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혁을 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공직사회의 개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 결국 정부가 하는 말과 행동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 감사원장의 무사안일 공무원들에 대한 문책 요구 방침은 순서가 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번 정부 들어 청와대와 정부조직은 더욱 비대해졌다. 정부개혁은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에게 일을 하라고 재촉하면 그들은 어떤 방식의 해법을 찾을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갖고 있는 '규제의 권한'을 한껏 활용하려 들지는 않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한가지 더 있다. 이번 정부는 각 분야의 청사진을 만들겠다며 1년을 보내고 있다. 무사안일을 탓하는 기자에게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공무원들은 원래 시키는 것은 잘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높은 데서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데 무슨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무사안일을 말하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공직사회의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 청와대가 일차적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