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충북 오송, 경북 김천, 울산 세곳에 경부고속철 중간역을 신설하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한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사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속철'이 '저속철'로 전락하게 된다는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인 까닭이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행정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국정운영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예는 비단 고속철뿐만 아니다.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과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역시 리더십 부재 상태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정부가 여론의 향배에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이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가 스스로의 철학과 원칙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매사를 여론의 눈치만 보는 한 이같은 혼란은 끝이 없을 것이다. '시끄러운 목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그쪽으로 따라가는 꼴이기 때문에 더욱 갖가지 집단이기주의적 요구가 분출하고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경제난이 극심한 데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정부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고속철 중간역 문제만 해도 그렇다. 건교부는 이번 결정이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게 결코 아니며, "고속철의 수혜지역을 확대하고 지역 균형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효과와 비용을 함께 감안한다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해당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만이 '여론'일 수 없다는 점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인구 1백만명이 넘는 도시에 중간역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도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국가안보를 위해선 한·미 공조 강화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고 보면,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병력규모와 성격을 놓고 심지어 관계부처들조차 갑론을박 하며 시간을 끄는 바람에 자칫 명분과 실익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건 되새겨 봐야 할 일이다. 정부당국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익을 위하는 길인지 먼저 명확하게 밝힌 뒤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어야 했다. 부안 핵폐기물처리장도 이대로 가면 무산될 것이 거의 확실한데,공연히 시간을 끌어 폭력시위와 무질서만 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부방침을 확실히 해야 한다. 밀고 나갈 의지와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중요한 정책결정에 앞서 광범위한 여론수렴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뚜렷한 원칙 없이 시간만 끌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국론분열을 야기하고 그 결과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태는 결단코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