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어트는 "미숙한 시인은 남의 것을 모방하지만,성숙한 시인은 훔치며,삼류시인은 빌린 걸 망가뜨리지만,일류는 그것을 통해 새것을 창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방 대상을 뛰어넘는 작품의 창출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잠재적 최면'이 무의식 중 표절을 유발한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일본 후지TV가 KBS2TV '스펀지'및 SBS 'TV장학회'가 자사 '트리비아의 샘'과 비슷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국내 TV프로그램의 표절 시비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토마토''해피투게더''이브의 모든 것' 등 상당수 드라마가 표절 의혹에 시달렸고,MBC드라마 '청춘'은 후지TV의 '러브 제너레이션'을 그대로 베꼈다는 지적에 따라 조기종영됐다. 드라마는 나은 편.쇼·오락 프로그램의 일부는 거의 복사 수준으로 여겨진다. 90년대 후반 '오락ㆍ퀴즈의 62%,가요ㆍ쇼의 20%가 외국것,그 가운데 95%가 일본것을 본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고,2001년의 '한국과 일본 방송의 프로그램 유사성 분석'(이기현)에서도 우리 프로그램 상당수가 기획의도 포맷 연출기법에서 일본것과 유사하다고 분석됐다. 원인은 단순하다고 한다. 작가 양성이나 자체콘텐츠 개발 노력 없이 시청률만 따지는 탓이라는 것이다. '재미있고 그래서 시청률만 높으면 된다'에 자존심과 도덕성은 간데 없다는 얘기다.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가 표절을 양산하는 셈이다.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사람 대부분이 능력과 강한 성취욕을 지녔다고도 한다. 어떤 게 성공할지 아는 사람이 표절한다"는 말도 있다. '사소한 것까지 표절로 몰아붙이는 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줄거리나 에피소드,쇼프로그램의 포맷 진행방식 등은 모두 지식재산권의 영역에 포함된다. 국제 시장에선 프로그램 포맷이 주요상품으로 거래된다. 표절은 이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재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후지TV의 문제 제기도 그같은 차원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21세기 콘텐츠 전쟁'의 참패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대충 베껴 만들기'는 이제 끝내야 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