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양헌석(47)이 자전적 성격의 장편소설 '오랑캐꽃'(실천문학사)을 펴냈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지난 88년 내놓은 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와 '아가베의 꽃'(1990) 이후 13년만의 소설이다. 소설은 죽는 날까지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었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유신정권하에서 시련을 겪지만 끝내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작고한 작가의 부친은 사회주의자로 해방 후 전향을 거부,12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작가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거듭되는 도피생활을 해야 했으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검정고시로 진학해야 했다. 자전적 소설답게 작가는 1970년대부터 중년이 된 2000년대까지 30년의 긴 이야기를 시공을 뛰어넘으며 막힘없이 풀어 나간다. 우리 사회에 내재한 다양한 분단 모순의 흔적들을 때로는 수채화처럼 투명하게,때로는 강렬한 유화그림처럼 능숙한 솜씨로 표현해 낸다. 모두 3장으로 구성된 '오랑캐꽃'에서 1,3장은 주인공 두 남매(윤지원·윤기립)의 시점이 교차하는 방식으로,2장은 객관적 시점인 3인칭의 서술로 꾸며진 점이 특징이다. 적극적이고 강한 도전의식을 가진 신문기자 출신의 여동생 윤지원과 소극적이며 늘 도망치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도박을 벌이는 오빠 윤기립이 대립각을 이룬다. 두 인물은 분열된 자아이자 우리 사회가 화해해야 할 대립된 정신세계를 상징하며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또 긍정적·진취적 세계관과 부정적·퇴폐적인 가치관,까다로우면서 주관이 뚜렷한 삶의 방식과 너그럽지만 나약하고 병적인 성품을 갖춘 두 주인공을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사의 이면을 비춘다. 작가 조정래는 "'오랑캐꽃'은 분단과 그 비극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특이한 입체 구성,생동감 넘치는 문장,개성미 갖춘 매력적인 인물들,오늘의 삶에 밀착된 현실감 등을 빼어난 솜씨로 조화시켜 한송이 작약을 빚어내고 있다. 양헌석의 침묵은 긴 듯했지만 이번 소설은 그 침묵에 너끈히 값하는 문제작"이라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