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이 있어야 할 곳 .. 裵洵勳 KAIST 초빙교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裵洵勳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작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은 과연 우리 경제에 필요한 요소인가? 정치 자금을 제공하고 분식결산을 하고 지배구조가 왜곡돼 문제가 되고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하고 투자를 게을리해 일자리를 줄이고 빈부의 격차를 만들고 노동운동가들에게 과도한 손해 배상을 청구해 노동을 탄압하고 이동전화 단말기를 수출하기 위해 마늘을 수입하여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마치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의 한가운데에 기업이 서 있는 것 같다.
경제학자 코아즈(R H Coase)는 거래비용 이론으로 199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기업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발생하는 경제 단위라고 했다.
경제 활동에 필요한 노동력을 시장 경쟁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임의로 선정해 발생한 조직이 기업이다.
그러니 기업은 태생적으로 불공평하게 생겼다.
시장에서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기업 단위로 경쟁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나 기업 내부에서는 항상 불공평한 결정이 발생한다.
기업내부는 기업을 소유하는 주인(주주),주인의 위임을 받고 경영을 책임진 경영진,그리고 봉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근로자들은 노동 조합을 만들어 집단 행동으로 기업주의 일방적 결정을 반대하기도 한다.
요즈음 한창 조사중인 불법정치 자금의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엄밀히 따지면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주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기업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시장에 직접 관여하는 정부의 중요 인사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일은 기업주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기업을 기업주와 동일시하여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는 타당하지 않다.
기업은 기업주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돼 운영되도록 지배구조를 만든다.
기업주의 의도와 상반되게 운영해 발생하는 비용이 대리인 비용이다.
지배구조는 대리인 비용이 최소가 되도록 형성되고 관리된다.
총액출자제한이나 기업 내부거래의 공정성에 대한 정부 규제는 그 근본 취지가 기업주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지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주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에는 기업과 기업주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대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불리한 규제를 받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는 정부 기업주가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타협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내국 법인에 취업하고 있고 좋은 직장을 보존하고 새로운 직장을 창출하는 것이 경제 발전의 목표라면 정부가 목적 달성을 위해 기업과 타협할 여지는 많을 것이다.
기업주가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경제 환경이 개선돼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역시 그 목적을 위해서 정부와 타협해야 한다.
오랜 정치자금 관행으로 발생한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사법처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법처리는 공평성이 아니라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기 때문에 형평에 어긋날 지도 모른다.
검찰의 철저하고 공평한 수사로 모든 불법이 근절된다면 기업은 일단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업들의 국내 경쟁 질서를 바로잡고 동시에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간에는 타협해야 할 사항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일단 과거의 비리를 척결한 후 기업은 합법적인 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정부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고 정부는 빈부 격차 문제나, 노동쟁의 문제나, 시장개방 문제나, 환경문제나, 국민 각계 각층의 이해상반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가지고 기업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 경제 활동의 공급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만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성장 주역이다.
정부가 기업을 지도하고 육성한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부에 의존하는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도태돼 국민 경제에 기여할 수 없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