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자기가 지금은 세계 5위 도자기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25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1978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 도자기 쇼'에 참가했다. 국제 도자기 쇼는 한 마디로 '도자기 올림픽'이다. 도자기 기술과 디자인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행사로 미국 유수 일간지의 전문기자들이 출품작을 심사해 순위를 매겼다. 나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다. 오랫동안 기술 개발에 힘써 온 데다 청와대에까지 납품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화려한 오프닝 세리머니가 펼쳐지고 마침내 등수가 발표됐다. "한국도자기, 랭킹 2백위!" 나는 기절할 뻔했다. 2백개 출품작 중 2백등이라니… 꼴찌였다. 오 마이 갓! 정말 하늘이 노랬다. 직원들에게 전시장 부스를 맡기고 호텔방에 들어왔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직원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팔고 가야지." 마음을 가다듬고 전시장에 나와 남들보다 싼 값을 매겨 놓고 상담을 진행했다. 가격이 싸니 좀 먹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들르는 사람마다 계약은 커녕 "넘버 투헌드레드!"만 연발했다. 어떤 노파는 우리 그릇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까지 했다. 정말 참담한 패배였다. "두고 봐라, 다시 미국에 온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때부터 절치부심해 한국도자기를 50개국에 연간 2천만달러를 수출하는 세계 5위의 도자기 회사로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