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영웅] 김기문 <(주)로만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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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a smuggler?" (당신 밀수꾼 아냐?)
1989년 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공항.
출입구 검색대 앞에서 세관원과 나는 입씨름을 벌였다.
"이 많은 시계들이 도대체 뭡니까? 압류하겠소."
그는 황급히 담당관을 불렀다.
"아니, 왜 그러는 거요. 이 시계는 우리 회사 제품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자기 회사 제품을 밀수하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영문 명함과 카탈로그까지 내놓고 통사정을 했지만 세관원은 아예 나를 밀수꾼이나 보따리상쯤으로 취급했다.
"당신이 바이어라면 샘플 몇 개만 들고 다니면 될 일이지 이렇게 가방을 몇개씩 들고 다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시 중동에서는 보따리상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시계 등을 팔아 많은 차액을 남기고 있었다.
"중동 전역에 우리 회사 시계를 알리고 팔기 위해 먼 길을 날아온 사람입니다. 샘플 몇개 보이자고 값 비싼 비행기 삯을 치르고 이곳까지 오겠습니까? 만나야 할 거래선이 너무 많습니다."
공항경찰에 체포되는 신세는 면했으나 샘플용 시계가 담긴 가방은 결국 통관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모든 걸 포기하고 공항 대합실에서 새우잠이라도 자두려고 누웠다.
하지만 이리저리 아무리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 속에선 꿈결인 듯 잠결인 듯 지나간 인생역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로만손시계를 창업할 무렵인 1980년대 후반 국내 시계시장은 대기업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었다.
자본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덩달아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로만손시계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잡았다.
1년 중 1백50일 이상 떠나는 해외출장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샘플 가방은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 그대로 느껴지곤 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보니 매번 보따리상이나 밀수꾼으로 오인받아 곤욕을 치르는 것도 다반사였다.
오메가(Ω), 롤렉스, 라도, 세이코….
세계 유수의 시계 브랜드는 기억하기 알맞고 부르기 쉽다.
'세계시장에서 제대로 대접 받으려면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업 초기부터 갖고 있었다.
'로만손' 브랜드는 스위스 '로만시온(Romancion)'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계 1차대전 때 프랑스의 시계 기술자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스위스의 산악지대에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시계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이곳은 시계 본고장의 하나로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로만손' 브랜드는 시계산업의 본산인 스위스의 명성을 브랜드 네임에 원용함으로써 고급 제품 이미지를 풍기도록 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
해외시장에 '로만손'을 알리는데 전력 투구한 덕분이었을까?
'로만손'은 이제 세계 명품 대열에 들어설 정도로 알려졌다.
몇년 전, 스위스 시계공업협회 아벨란제 회장을 만났을 적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김 사장, 당신은 우리나라 도시 이름을 훔쳤소."
내 여권에는 스탬프잉크가 마를 날이 없었다.
지구촌 어디든지 시계를 팔 수 있는 곳이라면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우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세계 시계박람회 등 각종 전시회에 부지런히 참가했다.
"로만손? 어느 나라 제품이죠?"
바이어들은 우리 제품을 만지작거리면서 품질을 정확히 평가하기보다 브랜드부터 따지고 들었다.
오기가 생겨 일년 동안 번 돈을 모조리 박람회 참가비용에 쏟아부을 정도였다.
주위에서는 바보짓이라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각종 박람회에 꼬박꼬박 참가하다보니 시계에 대한 국제적 안목이 생겨나는 것은 물론 바이어들의 취향도 파악할 수 있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을 벌여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커팅 글라스(Cutting Glass) 시계였다.
사람들은 보석을 좋아한다.
유리로 보석의 느낌을 표현하자는 컨셉트가 구체화됐다.
컨셉트는 꽤 괜찮은 것 같았으나 문제는 기술이었다.
유리를 보석처럼 깎으려 하니 강도가 약해 번번이 부서졌다.
유리 가공공장 기술자들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손을 가로저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해 기술개발에 매달리도록 독려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사장님! 커팅 글라스 시계 천개가 하루 만에 다 팔렸습니다."
처음 출시한 제품을 서울 강남역 주변에 뿌렸는데 대성공이었다.
공장에서 삼백개만 만들자고 하는 걸 우겨서 일천개를 만들자고 했는데 단 하루 만에 다 팔려 나갔다.
미리 주문을 예약해야 상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해외시장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처음 커팅 글라스를 중동 시장의 중심지 두바이에 뿌렸다.
로만손 커팅 글라스 시계의 우수성을 확인한 바이어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면서 미국 뉴욕은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에서까지 주문이 폭주했다.
출시 초기에 15달러 하던 시계값이 25달러까지 올랐다.
로만손의 커팅 글라스 시계 때문에 유리공장이 30∼40개 새로 생겼을 정도였다.
커팅 글라스 시계는 회사의 연매출을 6억원에서 60억원으로 10배 끌어올리며 단숨에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로만손은 비록 중소업체지만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과 접촉하면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첫째는 1국 1바이어를 고수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만약 한 나라에 여러 명의 거래선을 두면 그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여 제품가격을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선정된 우량 바이어에게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와 옵션을 부여하고 광고, 포장재 등을 과감히 지원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바이어들끼리 서로 헐뜯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은밀하게 협박하는 이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납치를 당했다.
안면이 있는 바이어가 목적지까지 차를 태워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몰고 가는 승용차의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사막 한 가운데에서 차가 멈췄다.
"미스터 김! 왜 우리에게는 물건을 대주지 않는 거요? 우리를 얕보는 거요? 만약 물건을 주지 않으면 이 사막이 당신의 무덤이 될 거요!"
"하하하!"
위협 앞에서 나는 겁없이 껄껄 웃었다.
웃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든 말든 그 순간 내겐 '우리 제품이 이 정도로 인기가 좋구나' 하는 자부심과 함께 성공의 전율이 온 몸에 느껴졌다.
그 거래선과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과 함께 기술개발에 주력하면서 로만손의 매출은 계속 늘어났다.
MGP(Multi-Gold Plated) 시계는 금이 벗겨지지 않게 하는 세계 최초의 도금기술로 명성을 얻었고, 코인 다이얼(Coin Dial) 시계도 잇따라 히트시켰다.
이렇게 해서 로만손의 수출은 1992년 5백만달러를 넘어섰고, 1996년에는 마침내 1천만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안았다.
수출이 1천만달러에 육박할 즈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제품은 중저가 브랜드로 취급됐다.
수익이 적고 불황이 찾아오면 맨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바로 중저가 브랜드의 특성이었다.
"변해야 산다. 그러기 위해선 빨리 고가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창업 후 늘 기술력 향상과 디자인 개발을 최우선의 경영목표로 삼아온 나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직원들은 이런 나를 '왕디자이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고가 브랜드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개발팀을 독려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ELEVE(엘베)'였다.
수출을 위한 아이디어 싸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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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문 사장 약력 ]
55년 충북 괴산군 도안면 출생
82년 솔로몬 시계공업(주) 영업이사
88년 (주)로만손 대표이사 사장
98년 한국시계공업 협동조합 이사장
2000년 기협중앙회 벤처기업특별위원회 위원
2001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002년 코스닥 등록법인 협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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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수출시장개척 활동과 일화를 공유하고 싶은 무역인들은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대기업팀(02-360-4183, kbi@hankyung.com)이나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팀(02-6000-5194, hockey@kotis.net)으로 연락바랍니다. 시리즈 게재된 내용은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