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놀랍지만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 미흡하다."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과학교육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한인규)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한 '국제 과학기술컨퍼런스'에 참석한 6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경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림원 회관에서 20일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들 노벨상 수상자는 또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노벨상 수상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좌담회에는 우리측에서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 한인규 원장, 박영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나온 과학기술 분야 최고 석학들의 발언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참석자 > J R 슈리퍼 <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 > (1972년 물리학상) 앨런 히이거 <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 (2000년 화학상) 리하르트 에른스트 < 스위스 취리히연방기술연구소 교수 > (1991년 화학상) 이바르 기아버 < 노르웨이 렌슬레연구소 교수 > (1973년 물리학상) 시라카와 히데키 < 일본 쓰쿠바대 교수 > (2000년 화학상) 앨런 맥디아미드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 (2000년 화학상) 박호군 < 과학기술부 장관 > 한인규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박영우 <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사회) > ----------------------------------------------------------------- △ 사회 =한국에선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해야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과학적인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공계 진출을 촉진할 수 있을까요. △ 맥디아미드 교수 =4세 때부터 과학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과학 위주로 꾸미는게 중요합니다. 산꼭대기의 눈은 왜 녹지 않는지 등의 간단한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게끔 시간을 주는게 필요합니다. △ 에른스트 교수 =청소년들이 과학적 현상이나 실험을 직접 경험하는게 중요합니다. 각 지역사회마다 과학놀이공원을 많이 만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 놀이공원에서 학생들이 많은 것을 즐기면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과학클럽 같은 동호회를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학생들이 지역 내 대학 교수들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히이거 교수 =어린이들이 과학의 중요성을 자발적으로 느끼는게 중요합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 과학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엔 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도 많이 실립니다. 과학이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 기아버 교수 =아이들은 게임을 좋아합니다. 과학에 게임적인 요소를 도입해야 합니다. 수학ㆍ물리 올림피아드가 이같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시라카와 교수 =중학교를 마칠 무렵 장래희망에 대해 써내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물리 화학을 전공해 새로운 플라스틱물질을 만들겠다고 적었습니다. 어머니가 매일 아침 싸주시던 도시락 때문이었습니다. 도시락이 뜨거워 도시락통이 일그러지고 그것을 싼 비닐도 녹아버려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같은 단점을 없앤 물질을 만드는게 어릴 적 꿈이었습니다. △ 슈리퍼 교수 =진심으로 열정을 갖고 가르치는 경험 많은 과학교사가 필요합니다. 고등학교 교사 재직시절 학생 37명중 17명이 트랜지스터를 직접 조립토록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17명의 장래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연구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데도 주력해야 합니다. △ 박 장관 =과학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데 공감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유년기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부는 대전 중앙과학관 외에 서울에 또 하나의 과학관을 건설 중입니다.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 시라카와 교수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교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입니다. 많은 경우 아이들이 부모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면 틀린 답변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다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과학지식을 갖게 해야 합니다. △ 맥디아미드 교수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부모들은 간단한 과학문제에 대한 답변도 못합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선 대중에게 과학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할 때 후보들이 유전공학 지구온난화 등에 대해 과학적으로 맞는 말을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박 장관 =부모들을 교육시키는게 중요하다는데 공감합니다. 과기부는 TV의 과학프로그램, 신문의 과학섹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과학기술 TV채널을 신설, 11월부터 시험방송합니다. △ 사회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있어 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봅니다. △ 히이거 교수 =40년 전부터 한국은 생산기술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것이 생산기술 향상으로 이어졌고 경제발전을 이끌었다고 봅니다. 이제는 과학수준을 높이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재가 몰리고 수준이 높아질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선 과학 수준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 맥디아미드 교수 =며칠 전 삼성을 방문하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50년 전에 기업들은 2백㎞ 내에서 인력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세계가 대상입니다. 한국에서만 생각할게 아닙니다. 전세계의 경험있는 인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 에른스트 교수 =한국대학은 적어도 교수의 30%를 외국인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영어를 교육언어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저명한 외국 교수들이 한국으로 모일 것입니다. △ 히이거 교수 =문화적인 요소도 신경써야 하는 대목입니다. 외국에선 학생들이 교수 이름을 부르며 허물없이 다가갑니다. 서로 가까워지다보니 접근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교수들은 너무 다가가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 기아버 교수 =캐나다 과학한림원은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해 1천여개 이상의 교수직을 만들었으며 임금 수준을 높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 향하던 캐나다 과학자들이 교수직에 매력을 느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슈리퍼 교수 =정부의 기초 연구지원 패턴을 보면 마치 주식시장과 같습니다. 고점과 저점이 있으며 구성원들이 유행분야를 쫓아 몰려다닙니다. 보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투자가 필요하며 즉각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보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처럼 관심분야가 자주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 박 장관 =물론 노벨상 수상이 연구의 목표가 돼선 안됩니다. 지속적인 지원을 하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정부에 전체 연구비 중 4분의 1을 기초과학에 지원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외국 석학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입니다. △ 사회 =일본정부는 최근 향후 50년 동안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 시라카와 교수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게 그 계획의 목표입니다. △ 맥디아미드 교수 =성공 가능성이 1%밖에 안 되더라도 엉뚱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과학자들에게 줘야 하며 이를 제도화시켜야 합니다. △ 사회 =노벨상이 과학기술과 사회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얘기했으면 합니다. △ 슈리퍼 교수 =노벨상을 수상하면 유명해지고 정복감도 느낍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과학계의 에베레스트산'을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식이 쌓여가고 국제교류와 우호도 증진될 것입니다. 성취하려는 정신이 젊은이들에게 필요합니다. △ 에른스트 교수 =노벨상은 책임감을 부여합니다. 또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집니다. △ 기아버 교수 =노벨상은 연구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구시간을 많이 빼앗깁니다. 모르는 주제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데 이에 답하고자 하는 유혹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한 원장 =한국정부는 노벨상 수상자 탄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년 한림원 10주년 행사에도 여러분들이 꼭 참석, 과학자들의 힘을 북돋워줄 수 있는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춘호ㆍ송대섭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