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을 둘러싼 KCC측과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간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 가운데 양측이 엘리베이터 주식매입과정의 도덕성을 두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먼저 정 명예회장의 도덕성을 문제삼은 쪽은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씨(용문학원 이사장).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인 김씨는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정 명예회장이 딸(현정은 회장)을 불러 상속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 명예회장은 20일 자신의 심정을 담은 발표문을 통해 "상속 여부를 검토할 당시 고(故) 정몽헌 회장의 재산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뿐더러 하이닉스 등 경영이 어려운 계열사에 대한 보증 채무까지 1조원에 가까워 상속 포기를 권유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KCC측은 유족이 상속을 포기하면 정 명예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에게 보증한 금융채무를 대위 변제하는 피해를 감수할 각오까지 하면서 한 조언이라고 강조했다. 정 명예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금융회사에서 2백90억원을 대출받도록 보증을 서고 대신 장모인 김문희씨의 엘리베이터 지분 일부(12.5%)를 대위변제에 대비해 담보로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베이터 주식 매입 시기와 배경에 대해서도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김문희씨는 KCC측이 상중에 현 회장 모르게 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담보로 맡긴 엘리베이터 지분을 찾아오기 위해 부채 일부를 갚자 정 명예회장이 오히려 격노했으며 그 시점부터 정 명예회장이 엘리베이터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명예회장은 "엘리베이터 주식 매입은 영결식 당일 장례식장에서,적대적 인수합병(M&A)을 우려한 현대그룹 최고 경영진의 다급한 요청으로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을 지키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주식을 매입했는데도 김문희씨가 모략에 가까운 근거없는 주장으로 자신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양측은 도덕성 시비와 함께 대북사업과 경영전략을 둘러싸고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 회장측은 경영권이 넘어가면 대북사업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점을 들어 경영권 유지의 명분을 쌓는데 노력해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 KCC측은 수익성을 따져 대북사업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정 명예회장은 대북사업을 유연하게 이끌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발표문에서 그는 "대북 사업은 현대그룹 내 대북문제 전문가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협의해 적절하게 운영해 나갈 것"이라며 "김 사장도 나의 진심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다툼이 심화하면서 양측은 앞으로의 그룹 운영 방안을 제시하며 여론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현 회장은 국민기업화를 도모함으로써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투명하게 기업을 이끌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정 명예회장 역시 전문경영인 체제를 내세우는 한편 주주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그룹을 주주에게 배당할 수 있는 건실한 기업으로 발전하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양측은 누가 현대그룹을 경영하는 게 기업 미래에 유리한지를 국민들이 판단해주길 바라는 모습이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