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현대비자금 200억원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법 형사3단독 직원들이 21일 서울 서초동 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용차에 현금을 싣고 있다.


`승용차는 50억 현금상자를 싣고 달렸다'


`현금 50억원이 담긴 상자들가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모두 실릴까, 또 이 현금을 실은 승용차는 주행에 문제가 없을까'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심리로 21일 종일 실시된 이색 현장검증에서는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번 현장검증은 검찰측 공소사실처럼 현금 40억~50억원씩을 승용차로 전달하는게 불가능하다며 변호인측이 요청한 현장검증 제안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 검증은 현금무게 측정과 현금상자의 제작, 적재, 수송 등 4단계로 나눠 진행됐으며, 박진만 검사 등 대검에서 3명, 변호인측에서 3명이 참석했으나 지난번 신라호텔 현장검증 때 직접 현장에 나와 검찰측 주장을 반박했던 권 전 고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전 10시부터 검찰과 변호인측 간에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현장검증의 하이라이트는 수십개의 현금상자가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들어갈수 있느냐는 점이다.


매번 전달된 금액과 현금상자 숫자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자 당초 재판부는 2억원, 3억원 상자를 조합해 현금 40억원에서 50억원 사이에나올 수 있는 24가지 방법을 모두 실험키로 제안한 것. 현금상자 적재에 앞서 검찰은 서울지법 앞마당에 쌓인 상자가 의외로 많아보이자 "현금상자를 복사지로 채우다 보니 너비가 최대 5cm나 늘어났다.

이런 검증은 검찰에 상당히 불리한 요인"이라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변호인측 역시 `상자가 모두 적재될 것으로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중요한것은 적재 여부가 아니라 50억원을 싣고 주행하면 안전문제가 생길 수 있고, 승용차로 현금을 옮겼다는 상황 설정에 문제가 많다는 점"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내 현금 40억원의 적재가 시작됐고 상자가 하나씩 승용차에 실릴 때마다 양측은 시종 굳은 얼굴로 이를 지켜봤으며, 마침내 3억짜리 4개, 2억짜리 14개 상자의적재가 완료되자 순간 검찰과 변호인의 표정이 엇갈렸다.


이어 진행된 차량 운행에서도 백미러, 사이드미러 등 시야에 장애가 없고 운전에도 별다른 불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이날 현장검증의 분위기는 검찰 쪽에유리한 듯한 방향으로 돌아섰다.


특히 운행 도중 교통체증이 심해 차량이 막히자 취재하던 일부 방송카메라 기자는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급히 세워 현장검증 차량을 뒤따라가는 진풍경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이후 41억원에서 44억원까지 9차례 진행된 적재 실험에도 모두 성공하자 변호인은 추운 날씨 탓인지 더욱 굳어진 표정으로 나머지는 됐으니 마지막으로 2억원짜리25개를 싣고 공소사실에 기재된 차량 이동경로대로 운행해볼 것을 급히 제안했다.


반면 검찰은 예정대로 다 진행하되 이동경로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맞섰으나 결국 재판부의 중재로 2억짜리 14개, 3억짜리 6개가 들어가는 검증에다, 2억짜리 25개를 싣고 하얏트 호텔을 경유, 남산 일대를 운행하는 검증만 추가하자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앞서 이날 오전 서초동 법조타운내 모 은행 지점 2층 회의실에서는 은행에서 현금 5억원을 제공받아 2억원과 3억원 상자의 무게를 재는 현장검증이 실시돼 2억원짜리 상자가 23.2kg, 3억원짜리 상자가 34.7kg이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처음에는 돈이 상자에 다 들어가지 않아 검찰이 일순 긴장하기도 했으나 몇차례시도끝에 무난히 돈다발이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편 이날 검증에는 내.외신을 포함, 모두 4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거물급 피고인을 둘러싼 이색 현장검증에 쏠린 관심을 반영했으며, 검증 내내 취재진은 밀착접근을 제한하는 법원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김상희 기자 jbryoo@yna.co.kr


'현금50억' 현장검증까지 재판부 고심흔적 '역력'


종이상자에 담긴 현대비자금 200억원이 승용차편으로 4~5차례 걸쳐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현장검증이 실시되기까지 재판부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변호인측은 당초 "현금 50억원을 실제로 승용차에 싣고 현대백화점 뒷길까지 가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현금 강탈사고가 잇따르고 있던 즈음이라 재판부가 난색을 표했지만 변호인이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고 검찰측도 "못할 것도 없다"는 입장을 보여 검증방법은 추후 결정하기로 하고 변호인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변호인측이 "현금은 상자 샘플을만드는 데만 사용하고 같은 무게의 종이로 상자를 채워 승용차로 나르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내 '사고' 부담은 줄었다.


재판부는 법원 근처 은행에 협조를 요청, 현금 5억원을 잠시 빌려 상자에 2억원과 3억원씩을 넣어봤다.


은행에서는 무이자로 거금을 빌려준 셈이다.


재판부는 현금 대용으로 A4용지 10만장, A3용지 5만장, B5용지 2만5천장 등 17만5천장의 종이를 준비했다.


상자는 45개는 법원이 특별히 주문제작했고 저울은 저울 제작업체에 협조를 구해 빌렸다.


현금을 나르는데 이용됐다는 다이너스티 리무진이 판매가 중단돼 현대상선 측에협조를 구해 어렵게 임원이 타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협조받을 수 있었다.


2억원 상자와 3억원 상자를 만들 때는 극히 일부 취재진에게만 취재를 허용했다.


상자안에 정확한 무게의 종이를 채우기 위해 비닐봉지에 모래를 담아 상자 안에넣었고 저울에 올릴 때는 테이프 무게까지 감안해 모래를 일부 덜어내기도 했다.


직원 12명이 이날 오전 내내 상자에 종이를 담아 저울에 재고 테이프로 붙였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측 주장을 모두 감안, 2억원 상자와 3억원 상자로 승용차에 40~50억원을 실을 수 있는 경우의 수 표도 준비했다.


신라호텔에서 이뤄진 현장검증에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리는 바람에 고생했던 재판부는 이날은 아침 일찍부터 포토라인을 설치했지만 내외신 기자들은 물론, 방송연예 프로그램 제작진까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검증에 참석한 검찰측 관계자는 "도대체 이런 검증을 왜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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