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이종승)이 오답시비가제기된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키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종승 평가원장은 24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언어 17번 문항에 대해 전문가들의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관련학회의 의견 조회와 수능 자문위원회 자문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3번 외에 5번도 정답으로 인정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평가원이 수능 정답을 수정한 것은 지난 94년 수능 도입 후 처음으로 평가원과수능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이 불가피해졌으며, 올해보다 출제위원 선정이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2005학년도 수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결정으로 오답시비가 꾸준히 제기돼 온 사회탐구(짝수형) 67번과 예체능 사회탐구 71번, 과학탐구 화학Ⅱ 67번 등에 대해서도 정답 수정요구가 잇따를것으로 보여 그 결과에 따라 대학입시 정시모집 일정의 차질도 우려된다. 또 언어영역 17번 문제에서 평가원이 원래 요구한 정답을 명기한 수험생과 학부모 등이 평가원을 상대로 법적대응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오답시비가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 언어영역 오답시비 = 언어영역 17번 문제는 백석 시인의 시 '고향'과 그리스신화 '미노토르의 미궁'을 제시한 뒤 '고향'에 등장하는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미노토르의 미궁'에서 찾는 문제다. 평가원은 '의원'이 시적 화자를 '고향의 추억' 속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됐고 '미노토르의 미궁'에서는 '미궁의 문'이 주인공 테세우스를 목적지인 '비밀의 방'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됐다면서 3번 '미궁의 문'을 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대 최모 교수 등 일부에서는 '미노토르의 미궁'에서 '실'이 사람을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비밀의 방에서 주인공 테세우스를 밖으로 무사히 나오게 하는 매개체였기 때문에 5번 '실'이 정답이라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평가원의 의뢰로 검토에 참가한 전문학회 전문가 7명도 4명은 평가원과 같이 3번을 정답으로 매겼으나 1명이 5번을 정답으로, 2명은 3번과 5번 복수정답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원이 복수정답을 인정키로 한 것은 전문가들까지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엇갈리는 의견을 낸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을 명분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내부에서많이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평가전문가들은 "중등교육과정 시험의 대원칙은 절대 진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중등교육수준에서 정답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는 것"이라며 "평가원이 이 대원칙을 깸으로써 더욱 큰 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 올 대학입시 차질 없나 = 평가원은 언어 17번 복수정답 인정으로 인한 수능채점과 향후 대학입시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평가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수능 채점은 차질없이 진행해 애초 예정한대로 12월2일 수험생에게 성적을 통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채점이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언어 17번만 5번을 정답으로 해 재채점을하고 이를 전체 성적처리에 반영해도 12월2일 성적 통지에는 차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복수정답 인정으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원래 정답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고 다른 영역 오답시비 문제에 대한 정답 수정요구가 잇따르면 전체적인 채점과 성적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12월2일 성적통지는 물론 같은 달 10∼15일 실시되는 정시모집 원서점수와 16일부터 2월까지 계속되는 정시모집 '가,나,다'군 전형 역시 순차적으로 미뤄지는 등 대학입시 자체가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평가원은 "언어영역 17번 문제 외의 다른 오답시비 문제는 재검토 결과 정답에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으나 이의를 제기해온 수험생과 고교 교사들은 인정할 수 없다며 벌써부터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2점짜리 문항인 언어 17번에서 5번이 정답이 됨으로써 언어영역 전체 평균과 등급, 5개 영역 종합등급 등에도 변화가 생겨 원래 정답자들의 상대적 피해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언어 17번의 정답률은 복수정답 인정으로 전체 수험생의 경우 15%에서 85% 이상으로 높아지고 상위 50% 집단은 정답률이 12%에서 94%로 높아져 이 문항의 배점 2점은 고스란히 평균 상승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yung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