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와 LG카드 문제 등으로 한국의 '국가 위험도(country risk)'가 다시 높아지면서 원화 환율이 고공 비행을 하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은 6개월 만에 1천2백원선을 훌쩍 넘어섰고 원ㆍ엔 환율도 26개월 만에 1천1백원선 고지에 올라섰다. 달러화나 엔화에 비해 원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수출 호조로 달러가 계속 들어오는 데다 외환 당국도 지나친 환율 상승을 바라지는 않고 있어 환율 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 한 달 만에 돌변한 외환시장 지난달 중순 원ㆍ달러 환율이 1천1백50원선 아래로 내려갈 때만 해도 외환시장엔 '추세적인 환율 하락'을 점치는 전망들 일색이었다. 대부분 연구기관은 앞다퉈 환율 전망치를 낮춰 잡았고 일부에서는 올해 말 원ㆍ달러 환율이 1천1백원선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상황은 1백80도 역전됐다. 특히 최근엔 △대기업 비자금 수사 △카드사 유동성 문제 △지구촌 테러 △국제유가 상승 등의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달러화를 사려는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 따로 노는 엔화와 원화 강삼모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로화나 엔화에 비해 원화의 상승세가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는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엔화는 이달 들어 달러당 1백8엔선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원ㆍ달러 환율이 1천2백원선으로 급등하면서 원화와 엔화의 교환비율인 원ㆍ엔 환율은 2001년 9월27일(1천1백8원8전) 이후 2년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국내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개선됐지만 엔화 차입 비중이 높거나 엔화로 수입대금을 결제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환율 더 오를까 갑작스러운 환율 상승은 국내외 금융회사들의 '손실 만회용 매수 주문(쇼트 커버링)'을 촉발, 환율 오름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환율 상승→쇼트 커버링→환율 추가 상승…'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가 다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승세는 단기간에 그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환율 하락에 대비해 '리드 앤드 래그'(leads and lagsㆍ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달러화 결제를 미루고 수출대금은 빨리 환전하는 것) 전략을 구사한 데다 외환 당국이 꾸준히 달러화를 매입, 외환시장에 '일시적인' 달러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하종수 외환은행 외환팀장은 "달러화로 받은 수출대금을 환전하려는 수요가 잔뜩 대기하고 있어 환율이 추가 급등할 여지는 적어 보인다"며 "외환 당국도 환율 급등으로 인해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