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등법원(민사 21부)은 지난 20일 삼성전자의 이사에 대한 주주 대표소송 선고공판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7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인해 정경유착의 관행이 다소 개선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의 경영감독권이 다소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판단 중 많은 부분들이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짐과 동시에 경영진들의 개인적 책임이 가중됨으로써 경영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경영판단에 따른 정치자금수수와 관련된 법적인 책임과 도의적인 책임이 전적으로 기업인들에게 전가됐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정치자금 수사 방향을 결정하는데 미치는 여파가 매우 클 것으로 우려된다. 분명한 것은 금번 판결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이다. 당시 대통령에게 총수로서 뇌물을 제공한 것은 경영상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했다는 점에서 볼 때 민사상으로 전적인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한 것은 법리상 타당성을 결여했다고 본다. 즉 경영진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경영판단 하에 제공한 뇌물공여액 전액을 개인적으로 회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업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미 19세기부터 판례를 통해 미국에서 정립돼 온 경영판단의 원칙은 기업의 경영진들에게 법률상 인정된 책임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에 경영진들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 한 경영판단으로 인해 발생된 회사의 손실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의 결과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위법한 행위를 한 경우에도 이것이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 경우에는 회사의 이익과 손실분을 상계해 경영진의 책임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손익상계의 원칙도 경영판단 원칙의 한 종류로 정립된 바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2002년 기업지배구조개선 원칙을 제정하고 상장회사의 경우 주주대표 소송요건인 지주비율요건을 5%에서 1%로 낮추는 한편, 명문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한 바 있다. 독일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규범을 통해 명문화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1990년 초부터 수차에 걸쳐 법률을 제·개정했음에도 지속적으로 자국의 자본시장과 경제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번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에 관한 판결은 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은 물론 최소한 손익상계의 원칙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금번 판결을 통해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강화되고, 경영투명성제고 및 정경유착의 차단이라는 단기적 효과는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경영진들의 모험적 경영이 위축됨은 물론 우리 경제 또한 크게 위축될 것이다. 선진 각국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법원이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자제해 왔고 경영진의 경영판단행위에 대해서는 존중해 왔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스러운 현시점에서 경영진에 대해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책임을 전적으로 경영자에게 전가한 법원의 판단은 분명 우리의 경제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문구를 많이 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강한 불신은 바로 법원이 정치적인 판단을 할 때 야기될 수 있다. 정치적 판단은 정치인의 몫이지 법원의 몫이 아니다. 더욱이 법원의 정치적 판단은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해 법질서뿐만 아니라 국가전체의 질서를 혼란시킬 수 있다. 부디 법원이 좀더 신중하게 법리에 따른 현명한 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shchun@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