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야 하는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동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도 사업자를 변경할 수 있는 '번호이동성'이 시행도 되기 전에 업체들이 공정위로부터 허위ㆍ과장광고 조사를 받게 됐다. 통신위원회도 서둘러 나섰다. 내년 번호이동성 시행에 앞서 단말기 보조금 지급 여부 등 그동안 제기된 각종 불법 논란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 시정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규제당국들이 전면에 나선 꼴이다. 통신위는 공정위 조사가 광고 문제에 국한돼 중복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번호이동성이 막 실시된 태평양 건너 미국과 비교하면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분위기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느낌이다. 공정위나 통신위는 과열광고전이나 상호 제소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고 끝날 일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업체들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정부 자신이라고 한다면 특히 그렇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희한한 번호이동성 경쟁 환경을 목도하고 있다. 정부는 선발사업자 가입자들이 먼저 후발사업자 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선발사업자부터 번호이동성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른바 순차적 번호이동성이란 것이다. 이왕 시행키로 했으니 그 자체에 대한 논란은 접기로 하자.사실 번호이동성을 두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통한 소비자 후생 증대 운운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한국형(?) 번호이동성을 도입할 때는 다른 의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바로 선발사업자로의 쏠림 현상을 우려해 후발사업자에 시장 공략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쟁 환경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빛 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럴까. 무슨 번호이동성 제도를 도입하건 기본적으로 고객의 이동이 가능해야 의미가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동 장벽은 높기만 하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단말기를 새로 사야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그러니 가입자를 이동시키려는 쪽은 어떤 형태로든 단말기 장벽을 깨려고 할 것이고 방어를 해야 하는 쪽에서는 이에 대응하려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불법이 되거나 적어도 불법의 시비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단말기 보조금 금지라는 지금의 규제환경 때문이다. 혹자는 호환성있는 단말기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주파수 대역이 다른 데다 기술적으로는 어떻다고들 하지만 만들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그렇게 할 유인이 없다는 데 있다. 방어를 해야 할 선발사업자로서는 특히 그렇다. 게다가 제조업체 입장도 있다. 후발사업자들이 싼 단말기를 많이 주문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과 수준을 유지한 채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느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입자 수에 따라 사업자의 단말기 시장 레버리지(leverage)는 차이가 큰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번호이동성 경쟁을 벌인단 말인가. 말이 좋아 요금 품질 서비스 경쟁이지 이런 상황에서 단말기 이동 장벽을 깨지 않고선 소용 없는 일이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일 뿐 어떻게든 단말기와의 연계 마케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다간 범법자 되기 딱 좋을 판이다. 기업이 알아서 할 마케팅 영역을 언제까지 규제해야 한단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닌 통신정책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