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와 관리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고 수능 후 발생한 문제와 논란에 대한 대처과정 또한 허점이 많았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떨어질 대로 떨어진 평가원과 수능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수능체제의대수술이 불가피해졌으며 수능 주관기관인 평가원과 감독기관인 교육인적자원부도이런 부실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7일 교육부는 올해 수능 관련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출제위원 선정과정에서 ▲수능 출제위원 선정과정상 검증체제 미비 ▲특정대 출신 및 출제경험자 반복참여 ▲출제 참여교사 대부분의 참고서 집필 등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출제문제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시중 수험서 유사 지문 출제에 대해 "출제위원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출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터넷상 출제위원 명단과 지문 유출의혹에 대해서는 "칸트 지문의 사전교감과 유출 가능성에 대해 경찰청에서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어 수능출제 및 시험 사후 관리와 관련, 언어영역 복수정답 또는 오답 논란에 대해 '공식적 처리체계 미비'를 지적하며 공식적인 이의제기 및 심사절차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 진상조사 결과는 출제위원 선정과정의 의혹과 명단 유출논란, 복수정답 인정과정의 타당성 등에 대한 의문을 명확히 해소하지 못하고 책임자도 가려내지 못해 방어에 치중한 '감싸기 조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복수정답 인정과정에 대해 서울대 교수의 수능자문위원회 참석 배경 등에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평가원이) 나름대로 대응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나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지적에 그쳐 논란만 가중하고 있다는 비난이일고 있다. ◇ 출제위원 선정과정 문제 = 출제위원 추천심사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등 출제위원 적격여부에 대한 사전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초빙교수 P씨의 경우 M입시사이트 강사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사전검증과정에서 누락됐다. 초빙교수여서 출제위원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내부 지적이 있었으나 '추천심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유자격자로 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출제위원 추천서에는 '직급'란에 '초빙교수'라고 명시하지 않고 '교수'로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대부분의 추천심사위원은 P씨가 초빙교수라는 사실도 몰랐던것으로 확인됐다. 출제위원 구성에서도 올 출제위원 156명 가운데 90명(58%)이 특정대 출신이고이중 65명(전체의 42%)이 이 대학 사범대 출신이었으며 특히 외국어와 제2외국어 영역 출제위원을 제외하며 특정대 출신의 비중은 7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출제위원 중에는 4회 이상 참여자가 14명이나 되고 5회 이상 참여 출제위원이 6명, 6회 이상 2명, 8회가 1명이었다. 게다가 2년 연속 참여 출제위원도 38명이나 돼 출제위원 사전 노출과 출제위원선정상 특정인의 영향력 행사 등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교사 출제위원 33명 중 23명(70%)이 참고서를 집필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평가원이 난이도 조정과 문항개발 능력만 지나치게 강조해 출제위원을 선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 출제문제를 둘러싼 논란 = 교육부는 유사지문 논란이 있었던 언어 및 외국어영역의 관련 지문들은 모두 정상적인 출제과정을 거쳐 최종 문제로 선정된 것으로해당 출제위원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출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제지침상 출제위원들의 경우 유사지문을 피하도록 하고 있으나 지문제시 및 문항개발 과정에 별도의 검증 장치가 없는 점과 검토위원들의 검토기간이충분치 않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교육부는 또 인터넷 입시사이트 강사 경력의 P씨가 출제위원이 되면서 인터넷상에 '언어영역에 철학전공 교수가 포함됐고 철학 관련 지문이 출제될 것'이라는 내용이 유포된 것과 관련해 경찰청에서 진상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그러나 문제가 된 칸트지문에 대해서는 "다른 철학전공 출제위원 2인과 공동작성했고 출제과정상 특정인의 지문이나 문항 출제의도가 반영될 수 없으며P씨의 학위논문과 유사성에 대해서도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수능출제 및 시험 사후관리 = 교육부는 언엉영역 17번 복수정답 인정과정에대해 평가원이 나름대로 절차를 밟아 대응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소수 전문가와평가원 소속 연구원에만 의존한 판단과 해명으로 논란을 증폭시키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답논란 등에 대한 검토위원들의 사전 검증기능강화와 공식적인 이의제기 및 심사절차 강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자녀가 수험생으로 이해당사자인 문제 제기자를 확인없이 수능자문위원회에 출석시켜 의견을 개진토록 한 것 등 복수정답 인정과정의 타당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진상조사도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부는 또 전 출제위원장의 참고서 집필에 대해서는 법률적 조치를 검토한 결과 법적 실익이 희박하고 윤리적 책임만 물을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출제위원 참여경력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향후 대책 = 교육부는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무총리실 등 관계 기관과협의해 출제위원 선정과 복수정답 시비, 유사지문 논란 등에 책임이 있는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할 방침이다. 또 국무총리 특별지시로 구성된 '수능출제.관리개선기획단'을 교육부 차관을 단장으로 해 출범하고 산하에 '출제위원선정개선위원회(위원장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과 '출제체제개선위원회(위원장 최운실 아주대 교수)를 둬 내년 3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선기획단은 앞으로 ▲출제위원 선정과정 투명성 강화 및 검증체제 확립 ▲출제위원 풀(pool) 다변화와 상시 관리체제 구축 ▲출제위원 자격요건 검증체제 강화▲출제체제 및 검토과정 개선 ▲출제위원 관리 및 출제 사후관리 개선 등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yung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