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수출이 연다.' 1964년 1억달러 수출돌파를 기념해 제정된 무역의 날(11월30일)이 어언 불혹의 나이에 이르렀다. 40년전.직물 어패류 나무제품 과일·채소 등을 수출해 1억2천만달러를 벌었다. 당시 아프리카 케냐 수준이었던 초라한 수출규모는 올해(예상치)에 1천9백20억달러,1천6백배로 늘었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1백%를 넘는다. 수출기여분을 뺄 경우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에서 내뿜는 공장연기는 전세계의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듯 싶다. "아시아를 다시 보자"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향후 수출전선에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이만 하면 무역종사자들의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하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축제분위기가 안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경제외적 변수가 지뢰밭처럼 곳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끼리 체결해 놓고도 국회의 비준 문제로 1년 넘게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한·칠레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장 골칫거리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농심(農心) 눈치 살피느라 FTA는 아예 뒷전으로 팽개쳐 놓은 분위기다. 문제는 FTA무산의 파급효과가 한·칠레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와 일본 등 여타국과의 FTA 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자명하다. "한·칠레 간 FTA 체결이 무산될 경우 한국은 통상고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재계측 우려의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대선자금 수사로 훼손된 이미지도 수출기업의 뜀박질에 부담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수출역군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공(功)을 정부로 돌리는데 인색해 하지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가꾸는 정부의 몫이 크다는 의미다.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은 사회전반에 팽배한 이념논쟁에 따른 '편가르기'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산을 옮기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트랙터"라는 얘기다. 2003년 세계경제의 최대 화두는 'MADE IN CHINA'였다. 전세계 해운선사의 절반 이상이 중국 항만에 닻을 내렸다. 한국만 해도 대만 홍콩을 포함한 화교권에 2백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하지만 지나친 중국의존형 경제는 분명 경계의 대상이다. 당장 곶감이 달다고 마구 빼먹을 수는 없다. 최근 무역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출업자들이 느끼는 한·중 간 기술격차는 평균 4.9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두르지 않으면 멀지 않아 중국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론은 자명해진다. 중국은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세계 각국에 구세주일 뿐 아니라 인접국인 한국에도 분명 기회의 땅이다. 제로섬 게임의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호 '윈윈'하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이에 대비한 '기술개발'과 '수출'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할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