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월요경제'] 경제가 안되는 109번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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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골퍼들이 공이 잘 안 맞을 때 갖다 대는 이유가 1백8가지나 된다고 한다.
연습이 부족했다, 어젯밤 과음했다, 요즘 슬럼프다, 고민거리가 많다 등등….
마지막 1백8번째는 "이상하게 안 맞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 사망' 외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주말 '골프홀릭'들에게 어울릴 법한 변명들이다.
1백8가지 이유는 홀컵 지름이 1백8mm인 데다 불교의 백팔번뇌를 연상시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요즘엔 1백9번째 이유가 추가됐다고 한다.
"웬일인지 당신하고만 치면 안 맞는다."
경제가 잘 안 굴러 갈 때 경제관료들이 늘어놓는 설명도 주말 골퍼들만큼이나 구구하다.
세계경기 침체, 노사불안, 집단이기주의, 유가ㆍ환율 불안, 부동산투기 등등.
수출은 한여름인 반면 투자ㆍ소비는 한겨울인 상황에서 1백9번째 이유를 추가할 법하다.
"(기업ㆍ소비자들과) 코드가 안 맞아서…."
이제 2003년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다.
1년 전 이맘때 치러졌던 대선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올해만큼 온갖 악재가 나라 밖에서 쏟아지고 나라 안에선 '코드'로 인해 확대재생산된 해도 드물 듯하다.
12월을 여는 이번 주에는 '식물 국회'가 정상화될지에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내년 예산안 심의 법정기한(2일)이 임박했고 세제개편 등 민생관련 입법 등 하루속히 국회를 열어야 할 이유만 꼽아도 1백9가지는 훨씬 넘을 것 같다.
지도부를 개편한 민주당이 청와대와 제1당인 한나라당 간의 갈등 중재에 나설지 주목된다.
경제부처들도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장ㆍ차관들의 일정표는 일주일 내내 국회 출석인데 한결같이 '잠정'이란 표시가 달려 있다.
확정된 일정은 산업자원부 장관의 '무역인의 밤'(1일), 총리실의 '국가전자무역위원회'(2일), 경제부총리의 '소비자의 날' 기념식(3일) 정도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한 기업인 줄소환은 계속될 전망이다.
벌써 5개 그룹 계열사가 압수수색 당했지만 '수사는 수사, 경제는 경제'라는 도그마가 지배하는 분위기다.
다만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재미를 못봐 이제는 연내 마무리를 위한 수순밟기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월 초여서 주목할 경제지표는 많지 않지만 4일 한국은행의 '3분기 가계신용동향'에서 가구당 빚 3천만원 돌파가 예상되며 '11월중 기업경기조사'에선 경기지표 호전과 기업인들의 얼어붙은 마음 사이의 괴리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골프를 잘 치려면 어깨 힘을 빼야 하는데 힘 빼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정치든, 수사든, 경제든 모두 괜한 힘을 주지 않는 올해의 마지막 달이었으면 좋겠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