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중소기업] <中> '3無'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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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공단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T사는 외국인근로자 8명이 달아나면서 일부 생산라인을 세워야 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되면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연말까지 유예를 해준다고 했지만 이같은 당국의 방침을 믿지 못한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사라진 것이다.
회사측은 이탈자의 자리를 메울 인력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쏟았지만 구하지 못한 상태다.
이 회사 대표는 "생산인력을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다"며 "이렇게 가다간 내년 초 공장의 몇몇 라인을 세워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소기업인들은 요즘 '3무(無)'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도 없고 일감도 없고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일감이 있는 업체는 사람이 없어서 곤란을 겪고,가까스로 고용을 유지하면 일감이 대폭 줄어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일이 몇 년 동안 계속되다보니 아예 사업의욕까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이달 말까지 유예키로 한 제조업 현장의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을 내년 초부터 본격화하면 인력대란을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 12만3천명 중 10만9천명이 중소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중소기업 현장을 지켜주어도 부족한 생산인력이 15만4천명(인력부족률 9.4%,금년 6월말 기준 기협중앙회 조사)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마저 빠져나가면 기계를 세워야 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특히 주물 인쇄 도금 등 이른바 기반기술업종의 경영자들은 걱정이 크다.
사람이 확보된다고 중소기업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업종별 선두기업조차 일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특히 인쇄 밸브 도금 등 전통 중소업종의 경우 외환위기 때보다 일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서울 성수동의 삼성문화인쇄는 최대 성수기인 올 연말의 수주량이 예년의 5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 회사 조영승 대표는 "수주가 줄어 기계를 일부 세웠다"고 말했다.
삼성문화인쇄는 일본 기업들의 캘린더와 국내 최고급 인쇄물을 찍는 업체로 이름나 있다.
이같이 수십 년 동안 고급인쇄물을 담당해온 업체가 이 지경이니 다른 업체의 사정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인쇄업체 관계자는 "연말은 캘린더 카탈로그 등의 일감이 밀려 3교대로 24시간 새워가며 일할 때인데 놀고 있다"며 "아예 수주활동을 포기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인력난과 일감감소 등으로 국내에서 사업하기가 힘들어지자 사업의욕을 잃고 조용히 문을 닫거나 해외로 떠날 궁리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손한웅 귀금속가공연합회 회장은 "국내에서 사업의욕을 잃고 돌파구를 찾기위해 해외이전을 추진하는 귀금속가공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기협중앙회가 중소기업 3백75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생산시설 해외이전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61.7%가 인력난 등으로 2년 내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응답했다.
조유현 기협중앙회 경제조사처장은 "앞으로 2년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중소기업이 10곳 중 4곳에 달할 정도로 위기가 심각하다"며 "가장 큰 문제는 중소기업인들이 사업의욕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업계는 획기적인 인력난 해소책의 마련,법인세 인하,각종 규제의 과감한 철폐,금융지원 확대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