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2% 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내년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의 회복과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우리의 수출성장을 유지시켜 주어 그나마 4∼5%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한다. 세계 경제는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는데 우리 경제는 아직도 활력을 찾지 못한다니 정녕 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음은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70∼80년대에는 8∼9%의 잠재성장률을 보였던 것이 2000년대에 이르러 5%대로 내려앉았다. 이런 추세라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요원해 보인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예측했던 프린스턴대학의 크룩만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내생적·질적 성장이 아니라 단순한 투입요소의 증대에서 온 양적 성장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경제가 근본적으로 자본량의 확대와 투입 노동력의 증가에 크게 힘입어 고속 성장을 이루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이러한 투입요소의 양적 확대조차도 어렵게 됐다. 급속히 전개되는 우리 사회의 노령화는 고도성장을 위해 필요한 활력 있는 노동력의 공급을 저해하고 있다.또한 고령화는 낮은 저축률로 이어지는데,생산에 참여하는 인구에 비해 소비에 참여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때문이다.저축률이 낮아지면 투자율도 낮아진다.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도 점차 감소되고 있다. 이런 여건 하에서 자본 축적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이유는 단순히 투입요소의 양적 감소에만 있지 않다. 크룩만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가 IMF의 관리체제에 들어 간 주요 이유는 관치금융에 의해 야기된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였다. 정부가 보장해 주리라는 기대 아래, 중복·과잉 투자가 가져올 위험을 무시하고, 무책임하게 기업에 대출해 준 결과 부실기업과 부실금융을 양산해 냈던 것이 아닌가? 최근 또 다른 도덕적 해이가 우리의 금융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번 위기가 기업과 금융회사 사이에 일어난 것이라면 이번 위기는 소비자와 금융회사 사이에서 유발된 것이다. 물론 정부의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 장려정책이 뒷 배경을 이루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회사, 기업, 그리고 이제 와서는 소비자들마저 도덕적 해이의 덫에 걸려 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 때문에 주어져 있는 제한된 투입요소조차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수출은 잘 되지만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 경제에 대한, 그리고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이 제도와 문화 안에서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같은 물적 조건을 지니고서도 국경을 사이에 둔 미국과 멕시코가, 그리고 압록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 북한의 경제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서구 자본주의가 꽃피게 된 것은 기독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의식에 기인된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경제발전 초기에는 '잘 살아 보자'는 모토가,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의 확립에 대한 염원이 우리의 도덕적 긴장감을 유지시켜주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익추구를 위한 갈등만이 난무할 뿐 공동체를 위한 도덕성을 확립하려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을 미래로 이끌어야 할 정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벌추구에 교육도 무너져 가고 있고, 기복신앙에 빠져버린 종교가 타락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긴장을 위해 나서야만 할 때이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