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설립된 벤처기업 S사는 한때 직원수가 30여명에 달했다.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 업체로 시작했다가 당시 장밋빛 전망이 보이던 응용프로그램 공급(ASP) 분야에 8억원을 투자하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모험은 실패로 끝났다. 공급기반도 없이 시작한 ASP 분야에서 지난해까지 적자만을 거듭했고 결국 초기투자자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자 회사문을 닫아야 했다. 개인휴대단말기(PDA)용 솔루션을 공급하던 N텔레콤은 한때 40여명의 직원에 연구소도 따로 뒀다. 하지만 PDA부문 시장성이 악화되면서 판로를 찾지 못해 고전했다. 결국 고객사인 이동통신사가 제품 납입을 중단하는 바람에 직원을 전부 내보내야 했다. 이 회사 대표는 "국내 정보통신 경기가 나아진다고 하지만 휴대폰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만 해당되는 말"이라며 "그나마 대기업 위주여서 중소벤처들은 여전히 힘든 겨울을 맞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들 회사처럼 문을 닫거나 벤처간판을 내린 업체는 최근 20개월 동안 3천4백여개에 달한다. 벤처기업수는 계속 감소해 지난 7월 4년여 만에 처음으로 8천개 밑으로 떨어졌고 10월 말에는 7천9백87개에 머물렀다. 2001년 말의 1만1천3백92개에 비해 30% 줄어든 것이다. 부도난 벤처기업형 업체도 매월 1백∼2백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벤처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금난이 가중되는 데다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업계의 가장 큰 애로는 자금문제"라며 "벤처투자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코스닥시장도 침체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내년부터 프라이머리CBO(채권담보부증권) 만기가 돌아옴에 따라 벤처기업들은 원금만 매년 1조5천억원 이상씩 갚아나가야 한다. 벤처업계의 자금대란과 연쇄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 벤처기업의 수익성도 악화되는 추세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벤처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02년 국내 벤처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전년 대비 19.2%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0.5% 증가에 그쳤다. 국내 벤처산업의 침체는 벤처투자 시장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2001년부터 줄기 시작,올해 들어서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특히 지난 상반기는 벤처투자가 최저를 기록했다.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중 총 투자금액은 2천6백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0% 줄었다. 지난 2000년 투자금액은 2조원에 달했었다.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등 일부 대형 벤처캐피털을 제외하곤 대부분 업체들의 투자금액이 50억원에도 못미쳤다. 투자조합 결성 숫자도 2000년 1백94개에 이르던 것이 지난해 60개로 급락했고 올 상반기에는 단 한 개의 조합도 결성되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나아지는 편이다. 투자조합도 연말에 줄지어 결성돼 하반기에만 총 20여개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당수 벤처캐피털들이 지난해에 이어 적자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