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國臣 < 중앙대 교수.경제학 > "경제가 발전할 수록 저축수단으로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의 중요성은 시들고 금융자산의 중요성은 커진다." 미국의 경제학자 골드스미스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이 말이 안맞는 나라도 없다. 지난 3년간 걷잡을 수 없이 오르던 서울 강남의 집값이 10·29종합대책 후에 가까스로 잡혔다. 심정적으로 서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집값이 억대 정도는 우습게 올라 서민들의 억장이 무너졌다. 급기야 대통령이 토지와 주택의 공개념을 거론하고 10·29대책으로도 집값이 잡히지 않을 경우 후속조치로 공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나왔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룬 집값의 내림세를 다지려는 듯 비투기지역에 주택을 3채 이상 소유한 사람도 당초 방침과는 달리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 포함시킬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부동산시장에는 비이성적 군집행태와 관성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10·29 대책은 이런 행태와 관성을 깨는 데 어렵게 성공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을 우선 잡고 보자는게 10·29 대책이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실현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다. 부동산의 보유세를 높이면 양도세를 낮춰야 한다는 것은 원론적인 얘기다. 10·29대책은 보유세를 과감하게 올려 나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면 양도세는 어떤가? 1가구1주택의 경우에 우리나라는 양도세를 아예 면제하니까 원론에 충실한 셈이다.그러나 1가구3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해 10·29대책은 2005년부터 엄청나게 높은 양도세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다수의 주택을 가지고 있어도 고통스럽고, 팔아도 고통스럽게 만든다면,이런 고약한 상황에 봉착하기 전에 2004년 한해 동안 집중적으로 집이 많이 나올 것이다.이에 따라 잘하면 올해 터무니없이 오른 몫 정도는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정부가 기대한다면 이는 너무 안이하고 단기적인 사고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은 그런 고약한 상황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어봤자 현 정부가 집권하는 3년이라고 예측한다. 이들이 대부분 버티기 작전으로 나올 경우 기대하는 집값의 큰 폭 하락은 일어나지 않고 주택시장을 경색시키는 결과만 낳기 쉽다. 90년대 초처럼 이제 주택경기가 하강국면의 초입에 들어설 공산이 크다. 과잉대책은 다음에 경기가 나빠지거나 정권이 바뀌면 뒤집어져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만 잃게 된다. 원론에 맞게 양도세율은 두루두루 낮춰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2주택 이상 소유자가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장기에 국민의 주거생활을 안정시키는 길이다. 정부는 이제 부동산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정책을 추출해 숨이 길게 이를 밀고 나가야 한다.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부동산의 실거래가가 제대로 보고되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종합대책에서 주택거래허가제까지 거론하고 있는데 이것도 과잉대책이다. 그러나 차제에 주택거래신고제 정도는 정착되도록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 지나치게 낮은 과표현실화율을 과감하게 올려가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과감하게 내려가야 한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실거래가격으로 세금을 매기는 기반이 구축되기 전에는 세율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먼저 보유세율과 양도세율을 내리고 과표현실화율을 올리면서 불성실신고에 대해 일벌백계하는 것이 순리다. 과표현실화율을 과감하게 올리겠다던 김영삼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과표현실화율이 30%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속가능한 정책을 펴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강남의 터무니없는 집값은 교육 프리미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육평준화 틀을 깨야 한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는 우리나라를 짓누르는 두 멍에이다. 하향평준화를 깨는 교육개혁이 강남불패의 신화까지 깨는 일석이조로서 우리 사회와 경제의 선진화에 초석이 된다.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야 골드 스미스의 말이 적용되는 정상사회로 올라설 것이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