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한은 부총재보는 "세계 주요 54개국을 조사해 본 결과 외환보유액을 떼내 투자에 활용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외환보유액을 언제라도 빼 쓸 수 있는 정부 잉여자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외환보유액 "더 쌓아야"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7년말 89억달러까지 줄어들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현재 1천5백3억달러로 급증했다. 한은은 이처럼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이유로 △경상수지 흑자(9백88억달러)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입(3백80억달러) △보유외환 운용수익(미공개) 등을 꼽았다. 이 부총재보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은 선진국 입장에서 바라본 잘못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국제관행상 다른 나라에 '통화가치 절상'을 직접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선진국들이 '애꿎은' 외환보유액에 시비를 걸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현재 국내 외화부채(1천6백억달러)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1천1백억달러)에 비춰볼 때 1천5백억달러 수준의 보유액이 다소 많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향후 통일에 대비하려면 지금의 두 배인 3천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용수익률 '양호' 한은은 지난 98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외환보유액을 굴려 거둔 수익률이 같은 기간중 리보금리(연 4.62%)보다 훨씬 높고 국제 투자은행들의 기준수익률(연 6.14%)도 웃도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은이 이례적으로 보유액 운용수익률을 공개한 것은 한은의 운용능력이 떨어져 수익성 제고 차원에서 KIC 설립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또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느라 쓸데없이 많은 비용을 치른다는 비판도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운용수익률은 외환보유액 유지비용인 '통화안정증권 이자율'(2년물 평균 연 6.02%)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은은 밝혔다. 최근 미국 씨티그룹은 미 국채 수익률과 통안증권 이자율을 단순 비교해 외환보유액 유지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5%수준이라고 주장했었다. ◆재연된 '한국투자청' 논란 한은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불거진 한국투자청 문제에 대해 공식 반대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박승 한은 총재부터 '절대 불가' 입장이 뚜렷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는 "약간의 수익을 위해 국가의 최종 지불수단인 외환보유액을 건드린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다"며 "정부가 정부소유 외국환평형기금에서 한국투자청 설립자금을 마련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역시 외환보유액을 쌓아야 하는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