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여성이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을 뿐입니다. 연쇄 강도범이라니 '큰 일 날 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7일 오전 출근길에 김모(43.여)씨의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던 강도를 잡은 최용학(49)씨. 자신이 붙잡은 강도가 남대문, 동대문 시장 연쇄 강도상해 피의자로 구치소에서 수감중 탈주한 박모(30)씨인 것으로 드러나자 최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최씨는 이날 오전 6시 7분께 출근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상계동 집을 나와 주차장을 걸어가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 김씨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새벽 옷장사를 마친 뒤 귀가하던 김씨는 이 날 집 앞에서 탈주범에게 얼굴과 머리 등을 돌멩이로 맞아 실신했고, 강도는 김씨의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려는 참이었다.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둑어둑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최씨는 "뭐야"라고 소리치며 도주하던 강도를 아파트 뒤쪽을 거쳐 아파트 경계선인 철조망까지 20∼30m 가량 쫓아가 10여분간의 격투끝에 강도를 붙잡았다. 철조망 위로 강도를 눕힌 뒤 다리를 난간에 걸어 완전히 제압한 최씨는 자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박씨를 넘겼다. 격투로 인해 오른 쪽 눈썹 위에 7바늘을 꿰맨 최씨는 "연쇄강도에다 도주범 인지는 전혀 몰랐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20살 대학생, 21살 은행원인 두 딸의 아버지인 최씨는 평소에도 늦은 밤 거리에서 취객을 보면 항상 지구대로 데려다주곤 한다는 그는 이로 인해 곧잘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고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원래 용산 전자상가에서 사업을 하던 그는 IMF외환위기 당시 타격을 받아 건설일용직으로 어렵게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고교 때 중거리 육상선수를 해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다는 최씨는 "힘없는 여성이 바로 눈앞에 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면 누구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이근표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병원에서 치료중인 최씨를 방문, "범인이 붙잡히지 않았다면 제2의 신창원 사건을 야기할 뻔 했는데 시민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줘 고맙다"며 용감한 시민상과 포상금 1천만원을 전달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