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추심원 따라가보니… ]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면서 바빠진 사람들이 있다. 연체자로부터 빚을 받아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채권추심원들이다. 연체자와 쫓고 쫓기는 '빚 전쟁'을 치르고 있는 채권추심원들. 그들의 하루 일과를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 사라진 채무자 =S신용정보사에서 3년간 채권추심업무를 맡아온 K 대리. 연체자를 방문하기 전 준비물부터 챙긴다. 지도, 연체자 채무현황, 통지서 등이 가방에 가득하다. K씨와 함께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송파구에 있는 스포츠마사지실. 이 곳 주인이 S금고에서 연체한 7백59만원(원금 6백만원)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어라? 주소는 분명히 맞는데.' 힘들게 찾아간 곳은 스포츠마사지실이 아닌 다단계 업체의 사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마사지실은 없어진지 한참 됐다'는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 "10명중 2∼3명은 주소도 틀리고 전화도 받지 않아요. 돈을 갚지 못하자 사라진거죠.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소도 없앤 채 지방 어딘가에서 숨어 살죠." ◆ 모럴 해저드 =공사대금 9백30만원을 회수하기 위해 E건설사를 찾았다. 여직원이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넓고 깨끗한 사무실을 보는 순간 '이런 회사가 왜 1천만원도 안되는 돈을 연체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동행한 추심원에게 사연을 물었다. "사업하는 사람들의 모럴 해저드는 진짜 심각해요. 회사가 부도나기 전에 재산을 빼돌리고 돈을 갚지 않는 거죠. 지난달에 방문한 업체는 2천만원을 연체한 곳인데 사장이 부인과 두 살짜리 아들 이름으로 돌려놓은 재산이 30억원이 넘더라구요." ◆ 묻지마 대출이 문제 =지하철을 두번 갈아타고 찾아간 곳은 강동구. 옷가게를 하는 L씨가 연체한 신용대출금 1천만원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대출서류에 적혀 있는 주소를 보고 찾아간 곳은 2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 대출서류에 따르면 L씨는 이 곳에서 옷가게를 운영, 매달 4백만원씩의 소득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외딴 곳에 있는 2평짜리 옷가게에서 매달 4백만원씩 이익을 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금융사 직원이 대출 전에 한번만 방문했더라도 이런 부실대출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 생계형 연체자도 많다 =채무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계속된 헛걸음에 지칠 무렵 찾아간 곳은 W식당. 이곳은 카드빚 6백만원을 연체한 B씨의 일터였다. 채권추심원을 만나기 위해 주방에서 나오는 B씨의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식당일을 하다가 화상을 당해 지난 두 달간 일을 못했다'는게 B씨의 얘기. B씨는 "매달 단돈 3만원씩이라도 갚아 나갈테니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 "B씨 같은 채무자를 봤을 때 가장 안타깝지요. 정말로 없어서 못갚는데 저흰들 어쩌겠습니까. 사실 채권추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신용불량자가 많아요. 대개 계약직이어서 수입이 일정치 않거든요. 요즘은 정말로 일감이 소낙비처럼 쏟아집니다. 일감은 적더라도 회수율이 높아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