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검찰이 밝힌 LG그룹 1백50억원의 제공 경로를 보면 박스 60여개를 2.5t 트럭을 이용해 한번에 옮긴 대담함이 엿보이는가 하면 어둠이 깔린 저녁무렵 고속도로 휴게소 매점에서 은밀히 키만 전달하는 기민함도 보여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에 따르면 대선을 한달 앞둔 작년 11월초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LG측에 추가로 선거자금을 더 보태줄 것을 요청했다. LG측은 검찰에서 '이미 공식 후원금을 냈는데도 한나라당의 재정위원장인 최 의원이 추가로 돈을 요구, 최소 1백억원 이상의 돈을 비공식적인 경로로 더 줄 것을 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 의원이 LG측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 돈을 달라고 '사정하는' 말투가 아니라 상당히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는 LG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최 의원의 전화 직후 LG측은 돈 전달방법을 둘러싸고 내부 의논에 들어갔고 강유식 당시 구조조정본부장이 전임 이문호 본부장의 소개를 받아 부국팀 부회장인 서정우 변호사와 접촉, 전달금액과 방법을 논의했다. 검찰은 서 변호사와 이 전 본부장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매우 절친한 관계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강 본부장과 서 변호사는 LG그룹이 1백50억원을 한나라당에 추가 지원한다는데 합의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트럭으로 한번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강 본부장은 구조조정본부의 이모 상무에게 자금마련을 지시했으며 LG그룹은 검찰 조사에서 이 1백50억원을 평소 대주주 갹출금을 모아 조성해 따로 보관해 두고 있던 돈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상무는 11월22일 1백50억원을 2억4천만원씩 담은 박스 62개와 1억2천만원을 담은 박스 1개 등 모두 63개의 박스에 나눠담아 LG상사 안양물류센터에서 2.5t 트럭에 실었다. 이 상무는 그날 저녁 8시40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위치한 주차장에 트럭을 세운 후 휴게소 매점에서 서 변호사를 만났다. 이 상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트럭 키와 화물칸 열쇠 등 열쇠꾸러미를 서 변호사에게 건넨 후 헤어졌으며 다음날 아침 돈만 사라진 채 원위치에 세워진 트럭을 회수했다. 검찰은 이런 상황을 여러 관련자들에 대한 방대한 수사를 통해 확인, 혐의 입증에는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서 변호사가 키를 전달받고 난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서 변호사가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있어 자세한 상황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