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조난사고로 실종됐던 세종과학기지 실종대원 8명중 전재규씨(27ㆍ사망)를 제외한 7명 모두가 생명을 건졌다. 9일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ㆍ한국이 12시간 빠름) 조난사고를 당해 실종됐던 강천윤(39)ㆍ김정한(27)ㆍ최남열(37)씨 등 세종2호 탑승대원 3명이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 바로 앞 넬슨섬 부근에서 사고 이틀째인 8일 오후 8시20분께 칠레 공군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 세종과학기지 주변 알드리섬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러시아 구조대가 김홍귀씨(31)등 세종1호에 탑승했던 또다른 실종대원 4명을 먼저 구조하고 전재규씨의 시신을 발견한지 12시간 만이다. ◆ 철저한 사전준비ㆍ훈련으로 피해 줄여 =강천윤씨 등 세종2호 대원 3명은 6일 칠레 기지에서 맥스웰만을 건너 세종기지로 가려다 갑작스러운 안개와 높은 파도로 조난 사고를 당했다. 인근 중국 기지로 방향을 바꾸던 세종2호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눈보라에 조류의 방향까지 변하면서 넬슨섬으로 떠내려가 8일 구조될 때까지 50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실종된 세종2호 수색을 위해 김홍귀 대원 등 5명이 나섰지만 이들 역시 7일 높은 파도에 밀려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들은 서로 몸을 의지하며 육지로 헤엄쳐 나와 몸을 밀착하며 체온을 유지했다. 일부 대원들이 탈진과 저체온 증세를 보일 때 남극경험이 많은 김홍귀 대원은 어깨를 흔들고 눈을 먹이며 의식을 유지했다. 이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사망자가 1명에 불과했던 것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훈련 덕분으로 풀이된다. 실종 대원들은 지난 7∼8월 2개월간 합숙훈련을 하며 수영 스키 독도법 무전요령 등 강도 높은 생존훈련을 받았다. 또 대원들은 산악인들이 입는 특수소재 방한복과 물 위에 최소 15~20분간 떠 있을 수 있는 방수구명복을 함께 입어 남극의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 우정의 합동수색, 극적 구조 이뤄 =실종대원들이 극적으로 구조된 데에는 칠레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주변 외국 기지 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8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실종자 구조작업은 이날 오전 10시20분께 러시아 수색대가 알드리섬 부근에서 김홍귀씨 등 세종1호 탑승대원 4명과 전재규씨의 시신을 수습하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칠레 함정과 경비행기 및 헬기 부대가 대대적인 합동 수색에 나섰고 아르헨티나 순시선, 러시아 보급선 및 한국의 남극 조사선이 알드리섬 인근 해역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육지에서는 한국 러시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중국 수색대가 각각 5∼6명씩 조를 편성, 넬슨섬 북단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 '예고된 인재' 지적도 =이번 조난사고에 대해 열악한 장비가 빚은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관계자는 "세종기지는 지난 88년 설립 당시의 시설과 장비를 지금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극에 기지를 운용 중인 대부분 나라들이 얼음을 깨면서 운항할 수 있는 쇄빙선(碎氷船)과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세종기지가 보유한 이동장비는 고무보트 4척이 고작이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고무보트뿐인 상황에서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던게 이상한 셈이다. 현재 남극기지에 지원되고 있는 연간 정부 예산은 30억원 수준. 지원금은 파견 대원들의 임금과 기지ㆍ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어서 기본적인 시설 보수조차 힘든 실정이다. 안산=김희영ㆍ이방실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