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톱깎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4년. 원래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우리 집안은 해방 후 북쪽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했다. 우리 4형제는 천안에 정착해 잡화상을 차렸다. 여러 제품들을 팔던 중 둘째 형이 어느날 손톱깎이 회사를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형은 당시 미제 손톱깎이 '트림(TRIM)'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손톱깎이 장사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형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는 무엇보다 어렸을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6ㆍ25 때 포탄을 맞아 한쪽 눈이 불편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하는 장사보다는 한 곳에 앉아하는 제조업이 더 맞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삼화메끼'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손톱깎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제품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드럼통을 잘라서 만들었다. 자동차 휠로는 지렛대를 만들었고 아크릴이 없어 미군 천막에 붙은 두꺼운 비닐창을 뜯어다 꽃무늬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얼마 후 그럴듯한 손톱깎이가 만들어지자 직원들은 환호했지만 솔직히 품질은 엉망이었다. 손톱깎이라기 보다는 '손톱뜯기'에 가까웠다. 날이 좋지 않아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손톱을 뜯어내는 정도였으니. "형님, 수출 해봅시다." 국내 시장만 갖고 사업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든 나는 형에게 수출을 제안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었던 터여서 잘만 하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수출? 턱도 없는 소리하지마. 괜히 수출에 손댔다가 회사 말아먹는다." 형은 한사코 반대했다. '형제간이긴 하지만 경영 스타일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구나.' 결국 나는 형과 다른 배에 타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간 손톱깎이 부품회사를 운영하다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다시 손톱깎이 회사를 차렸다. 1975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던 손톱깎이 회사 일이산업을 인수해 '대성금속(쓰리쎄븐의 전신)'으로 이름을 바꿨다.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나는 수출을 목표로 삼았다. 수출대행회사의 도움으로 첫 해에 40만 달러어치를 미국에 수출했다. 처음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수출했으나 품질이 입증되자 '킹스타(King Star)'란 브랜드로 자체 수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1978년 특허청에서 '킹스타' 상표를 쓰는 회사가 있으니 다른 상표로 바꾸라는 통보가 왔다. 그래서 새롭게 찾은 상표가 바로 지금의 '777', 쓰리쎄븐 브랜드다. 품질의 고급화와 인건비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동화 작업에 매달렸다. 이를 위해 수익의 전부를 투자했다. 다른 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설비투자를 했지만 나는 기업이 과도한 부채를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경영에 피로를 가져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1천원을 벌면 1천원을, 1만원을 벌면 1만원을 전액 투자했다. 그렇게 공장자동화와 기술개발을 진행시켰다. 그 결과 1987년 5백만달러의 수출고를 올렸다. 이듬해엔 1천만달러로 2배가 뛰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한 제품 개발에도 주력했다. 세계 시장을 겨냥, 한국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품보다 세트로 만들었다. 손톱깎이와 함께 미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를 함께 넣은 '매니큐어 세트'는 대히트를 쳤다. 미국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값 비싼 독일제 매니큐어 세트를 찾는다는 데서 착안한 이 제품은 당시 50달러나 하던 독일산에 비해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가격은 20달러 밖에 안돼 큰 인기를 얻었다. 쓰리쎄븐의 품질 제고에 크게 기여한 곳은 바로 포스코다. 손톱깎이 제조는 간단할 듯 보이지만 40여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품목이다. 철판을 프레스로 절단하고 열처리, 연마를 거쳐 최종적으로 도금에 이르기까지 손 가는 곳이 여간 많은게 아니다. 특히 원자재인 탄소강을 처리하는 과정은 최고의 기술을 요한다. '손톱뜯기'라는 홀대까지 받던 우리 손톱깎이는 포스코의 냉연강판 덕분에 세계적인 품질을 가지게 됐다. 그런 고마운 포스코가 요즘엔 우리 손톱깎이로 자사 제품을 홍보한다고 한다. "이 손톱깎이가 바로 포스코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큰 빚을 갚은 느낌이어서 기쁘기 그지없다. 현재 우리는 연간 3천여t의 강판을 쓰고 있다.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국 제품은 무엇일까? 반도체, 휴대폰, TV? 아니다. 바로 손톱깎이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1개는 갖고 있는 손톱깎이의 70% 이상에 '메이드인 코리아'가 찍혀져 있다. 쓰리쎄븐은 현재 92개국에 수출하여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간 생산량만 1억개. 1975년 법인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올해 매출액은 3백20억원으로 예상되고 수출금액은 2천2백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제는 중국에도 진출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쓰리쎄븐이 주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신규분야는 '브랜드사업'이다. 지난 3월 홍콩 소해 하나야카사에 '777' 브랜드를 사용해 중국과 홍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제조원가의 8%를 로열티로 받기로 계약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야카가 OEM 방식으로 제작한 등산용 칼과 낚시용 칼 등을 국내로 수입해 '777' 브랜드 제품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그동안 수출을 하며 고속도로에서 물류 화물차가 전복돼 고속도로 전체에 손톱깎이가 깔린 일 등 잊지 못할 사건도 많았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빼앗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법. 우리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 김형규 사장 약력 ] 35년 황해도 해주 출생 75년 대성산업사 설립 81년 대성금속공업(주) 대표 82년 수출의 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87년 수출의 날 대통령 산업포상 수상 88년 수출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94년 손톱깎이 세계 일류화품목 전문위원 96년 세계 일류화 제품제작사 선정(통상산업부) 99년 상공의날 석탑 산업훈장 수상 2001년 (주)쓰리쎄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