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뉴욕의 한 송년회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서혜경씨를 만났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특파원들과 환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서씨는 예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업들의 지원을 신신 당부했다. 서씨는 예술 분야가 나라와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스포츠보다도 중요한 것 같은데 지원이나 관심은 스포츠만 못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일본의 피아니스트 미도리를 보세요. 미도리가 얼마전 중국에서 독주회를 가졌는데 표가 동났습니다. 누가 샀겠어요. 현지 일본 기업이나 동포들 아니었겠어요. 미도리의 피아노 연주가 일본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높였겠어요. 그 즈음 한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독주회를 준비했었다고 해요. 그런데 표가 팔리지 않아서 몸살이라고 핑계를 대고 취소했다고 들었어요." 서씨는 미도리가 한국의 유명 피아니스트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데도 적극적인 후원으로 세계 곳곳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서씨의 말처럼 예술 만큼 나라를 잘 알리는 수단도 없다. 영화도 그런 수단중의 하나다. 지난 5일 개봉된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가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武士道'라는 한자 타이틀까지 단 이 영화는 19세기 일본의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작으로 톰크루즈가 주연, 미국 사회에 사무라이 열풍을 몰고 왔다. 케이블 TV인 히스토리 채널은 주말인 13일 2시간짜리 '사무라이' 다큐멘터리를 방영,24대를 이어가며 검을 만드는 대장간을 소개하면서 일본 문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마지막 사무라이'는 할리우드가 흥행을 노리고 만든 한 편의 영화였지만 일본 문화를 알리는 전령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치 경제력이 약한데 예술만 우뚝 솟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들이 예술이나 문화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한국 홍보는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세계 외교 무대인 유엔에서 열린 '한국음식 축제'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런 노력들이 쌓이면 한국에서도 '미도리'나 '마지막 사무라이'가 나올 날리 멀지 않을 것이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